[2015 호주 아시안컵] 이정협, 軍데렐라? 亞데렐라!

입력 2015-01-27 04:16
한국 축구 대표팀 이정협이 26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2015 호주 아시안컵 준결승전 후반 5분 쐐기골을 넣은 김영권을 등 뒤에서 끌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이정협은 전반 20분 결승 헤딩골을 넣었다. 연합뉴스

“독일 대표팀처럼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제 아시아 축구 맹주(盟主) 탈환의 문턱까지 올라왔다.”

한국 축구가 이라크를 물리치고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은 26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이정협(24·상주 상무)과 김영권(25·광저우 헝다)의 연속 골로 2대 0 완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1988년 카타르 대회 이후 27년 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또 1960년 서울 대회 이후 무려 55년 만의 우승 달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한국은 27일 치러지는 호주-아랍에미리트(UAE)간 4강전 승자와 오는 31일 오후 6시 같은 장소에서 대망의 결승전을 치른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군데렐라’ 이정협이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과 이날 경기 모두 최전방 선발로 나선 이정협은 ‘미완의 기대주’에 불과했던 자신을 발탁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의 믿음에 ‘100%’ 보답했다. 전반 20분 오른쪽 측면에서 김진수(23·호펜하임)가 프리킥을 올리자 골 지역 정면에서 번쩍 솟아올라 헤딩슛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대회 2호골이자, A매치 3호골이었다. 잔디 위를 미끄러지는 시원한 세리머니를 펼친 이정협은 후반 5분에는 페널티아크에서 볼을 따내 가슴 트래핑으로 김영권에게 공을 전달해 추가골을 도왔다.

지난해 말 처음 대표팀에 입소했을 때 “모든 훈련이 재미있다. 차두리(35·FC서울) 형을 보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던 이정협은 이제 결승골을 넣고 차두리와 기쁨을 함께 하는 선수가 됐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국내에서조차 생소했던 무명 선수가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해결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현역 군인 신분으로 월급이 약 1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아시안컵 출전 선수 통틀어 가장 작은 연봉으로 최고의 몸값을 한 선수가 됐다.

‘골 넣는 수비수’ 김영권은 쐐기포를 터뜨리며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충격을 완전히 날렸다. 김영권은 불과 반년 전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전에서 상대 공격수에게 수차례 공간을 내주며 2대 4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당시 팬들은 그를 ‘자동문’이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절치부심 끝에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슈틸리케호의 맏형 ‘차미네이터’ 차두리는 선발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뛰면서 대표팀의 승리를 뒷받침했다.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 유니폼을 반납하는 차두리는 마지막 남은 한 경기에서 태극전사로서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대표팀 ‘캡틴’ 기성용(26·스완지시티)은 중원 사령관으로서 후반 추가시간 교체되기 전까지 한 순간도 빠짐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강철체력을 과시하며 선수들을 이끌었다. 대회 초반 잦은 주축 선수 이탈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으로 대표팀이 흔들릴 때도 기성용은 중심을 잡아왔다.

남태희(24·레퀴야)는 공격 포인트는 없었으나 활발한 움직임으로 4강전 최우수선수에 해당하는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됐다. 남태희는 “오랫동안 한국 대표팀이 우승하지 못했다. 준결승전이 정말 중요했다”며 “우리가 하나가 돼 하나의 목표를 갖고 뛰어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