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길래… 드라마 주연 된 ‘현대인 마음의 병’

입력 2015-01-28 00:04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MBC ‘킬미 힐미’
SBS ‘하이드 지킬, 나’
tvN 금·토 드라마 ‘하트 투 하트’
그간 드라마 속 정신병원은 이런 모습이었다. 악역 배우의 말로(末路). 주인공을 괴롭히던 악역 배우는 결국 자신의 악행을 깨닫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격리되면서 울부짖었고 시청자들의 가슴은 통쾌해졌다. 한편으론 지능이 나이보다 다소 떨어져 보이는 순수한(?) 캐릭터로 등장해 황당하고 귀여운 사건 사고를 일삼는 감초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속 배경으로 정신과 병동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섬뜩했던 과거 모습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잘 정돈된 모습부터 눈길이 간다. 다중인격, 대인기피증과 조현증 등 정신질환은 이제 훤칠한 남녀 주인공의 숨겨진 아픔을 표현하는 요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고 병도 완쾌된다.

◇정신질환 치료하며 싹트는 로맨스=21일부터 매주 수·목요일 밤 10시대에 방송되는 MBC ‘킬미 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는 모두 남자 주인공이 해리성 정체장애, 이른바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인격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면서 1인 2역, 많게는 1인 7역까지 감당해낸다. 이들을 돕기 위해 ‘킬미 힐미’에서는 정신과 의사 오리진(황정음 분)이,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동물 조련사 장하나(한지민)와 최면술사 윤태주(성준 분)가 등장한다. 색다른 소재 덕분일까. 두 드라마는 동시간대 시청률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케이블 채널 tvN의 금·토 드라마 ‘하트 투 하트’에서도 정신질환을 앓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대인기피증과 안면홍조증 때문에 헬멧을 쓰거나 할머니 분장을 해야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차홍도(최강희 분)는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하기 위해 병원에 들어섰다가 정신과 의사 고이석(천정명 분)과 사랑에 빠진다. 고이석 역시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다.

상반기 안에 방송 예정인 드라마 ‘닥터 프랑켄슈타인’도 이 같은 분위기에 맞물린다. 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천재 신경외과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빈틈없는 모습을 보일 예정이다.

◇“시대 반영한 소재…잘못된 선입견 심는 것은 주의해야”=지난해 화제를 몰았던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괜사)’는 무시무시한 정신병동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주인공 지해수(공효진 분)가 정신과 의사. 상대역인 작가 장재열(조인성)이 조현병을 앓았고 장재열의 환상 속에서만 사는 가상의 인물 한강우(디오 분)까지 등장하면서 ‘뻔하지 않은 웰 메이드 드라마’라 불렸다. 환한 색감의 영상과 한 마디 한 마디 의미를 담아 낸 대사로 마니아층도 양산했다.

그렇다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모두 이 ‘괜사’의 문법을 베낀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준비과정이 평균 2∼3년에서 5년 이상도 걸리는 만큼 최근 사회적 분위기가 드라마에 투영됐다는 해석이 더 정확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7일 “정신적인 충격의 일상화, 현대인 대부분이 우울증 등 약간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한 소재”라며 “주로 멜로 코드와 어우러져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랑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결말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한 드라마 제작자 관계자는 “다중인격이나 대인기피증의 경우 살아있는 캐릭터 표현이 가능하고 소재 또한 무궁무진해 제작진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며 “‘힐링’을 그리며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한편으론 질병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