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규제’ 앞두고 대기업에 혜택주기?

입력 2015-01-27 00:18 수정 2015-01-27 09:51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왼쪽 세 번째)이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열린 ‘최경환 부총리 초청 전국 상의 회장단과의 정책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흥석 광주상의 회장, 최 부총리, 박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손종현 대전상의 회장,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이희평 충남북부상의 회장.이병주 기자

정부가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 완화를 검토하는 시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본격 착수하는 시기는 공교롭게 겹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대기업집단으로 한정된 점을 감안하면 두 사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대기업집단 기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성을 대기업 전체 규모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 2009년에 대기업집단 기준을 기존 자산총액 2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올릴 당시 대기업집단 전체 자산은 1301조6000억원이다. 5년이 지난 지금 전체 자산은 2205조8000억원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반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대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할 중견기업들이 불필요한 규제로 성장이 저해되고 있다는 논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26일 “지난해 말 규제 기요틴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건의했고, 이후 공정위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재계 논리대로 7조원으로 상향 조정될 경우 아모레퍼시픽, 하이트진로, 태영, 이랜드 등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정부가 이 사안을 검토하는 것이 단순히 자산 5조∼7조원 사이 기업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는 의미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재계는 강력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대기업집단 기준 완화 움직임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공정위는 다음 달 14일부터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본격 시행한다. 규제 대상은 대기업집단 소속이면서 총수와 친족이 발생 주식의 30%(비상장사 20%) 이상을 소유한 계열사가 규제 대상이다. 관련법은 지난해부터 시행됐지만 1년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음 달부터 처음 적용되는 셈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과 대기업집단 기준이 모두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해당되는 사안인 만큼 기준을 7조원 이상으로 올리면 자연스럽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도 축소될 공산이 크다. 현재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대기업집단 계열사는 187개사다. 대기업집단 규모가 7조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될 경우 이 중 14개 계열사가 제외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대기업들은 지난해부터 계열사 매각, 총수 일가 지분 매각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총수 일가 사이에 이어온 일감 몰아주기의 고리를 깨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현대차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추진했다가 실패한 글로비스 지분 13% 매각도 총수 일가 지분율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30% 이하로 낮추기 위한 시도였다. 이번에 대기업 기준이 상향 조정될 경우 자산 5조∼7조원 사이 대기업뿐 아니라 8조∼10조원 대기업은 계열분리 등을 통해 자산을 7조원 밑으로 분산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대기업집단 기준 완화 추진은 경제 민주화의 마지막 남은 ‘유산’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무력화하기 위한 재계의 반격인 셈이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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