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유흥주점에서 하룻밤 접대비로 1200만원을 썼다. 현금다발은 과자상자에, 50만원권 기프트카드(무기명 선불카드)는 담뱃갑에 채워 뇌물로 전달했다. 3조4000억원대 사기대출 이면에는 이런 검은 거래가 있었다.’
2004년 설립돼 2010년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 우량수출기업(TCC),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 ‘히든 챔피언’(수출우량 중소기업) 기업으로 잇따라 뽑힌 모뉴엘의 성공신화는 신기루로 드러났다. 사기대출과 뇌물이라는 모래 위에 쌓아올린 ‘누각(樓閣)’이었다. 2013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한 기업이 지난해 파산한 이유다. 박홍석(53·구속기소) 대표는 수감돼 법정에 섰다.
모뉴엘의 성장 동력은 사기대출이었다. 박 대표는 2007년 자금난에 봉착했다. 주력상품이던 홈시어터(HT) PC에 하자가 발생해 대규모 반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부도 위기에 몰리자 박 대표는 반품된 제품을 홍콩의 페이퍼컴퍼니에 위장 수출했다. 그리고 이 수출 실적을 근거로 대출을 받아 숨통을 텄다.
손쉬운 방법을 찾은 박 대표는 2009년 본격적으로 범행을 시작했다. 대당 8000∼2만원 수준인 HT PC의 가격을 대당 200만∼300만원으로 부풀린 뒤 이를 해외에 수출한 것처럼 속였다. 이어 허위 수출 서류를 시중은행에 내밀고 대출을 받았다. 대출 상환일이 다가오면 다른 곳에서 대출을 받아 갚는 ‘돌려 막기’가 시작됐다. 모뉴엘이 빌리고 갚은 액수는 7년간 모두 합쳐 3조4000억여원에 이른다.
엄청난 사기행각에는 국책금융기관인 무보가 가담했다. 매년 모뉴엘에 수천억원대 보증을 섰다. 시중은행 8곳이 모뉴엘과 무보를 믿고 돈을 내줬다. 무보가 선뜻 보증을 서주고 보증한도액까지 늘려준 배경에는 뇌물과 부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무보의 간부급 임직원 6명은 모뉴엘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수출입은행 간부 2명도 금품을 받고 수출금융 지원 한도를 1000억원대로 높여줬다. 박 대표는 수억원의 현금다발을 와인·티슈·과자 상자에 넣어 이들에게 건넸다. 수백장의 50만원권 기프트카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담뱃갑과 비눗갑을 이용했다. 접대비로 하루에 1200만원을 쓰기도 했다.
또 이모(60) 전 무보 이사의 자녀를 모뉴엘에 취직시켜줬다. 국세청 간부 1명에게는 세무조사 기간 단축 등 편의를 봐준 대가로 3000만원을 건넸다. 검찰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담보 없이는 쉽게 대출해주지 않는데 무보가 보증을 서 대출이 가능했다”며 “무보 사장과 이사 등은 퇴직 후에 더 많은 금품을 받았고, 이들은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사기행각을 도왔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금품을 건넨 이들은 10명이며 로비 액수는 모두 합쳐 8억원이 넘는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범기)는 박 대표 등 모뉴엘 전·현직 경영진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25일 기소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중 3명은 1조2000억원대 허위 수출입 신고를 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3조4000억원대 시기대출 모뉴엘, 이면엔 ´추악한 거래´ 하룻밤 접대 1200만원 과자상자에 수억 현찰
입력 2015-01-26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