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운명의 날’… 급진좌파 승리 유력

입력 2015-01-26 03:49
그리스 경제와 유로존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리스 조기총선이 25일(현지시간) 실시됐다. 집권이 유력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총선 이후 구제금융의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여 유럽연합 등 채권단과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거나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그렉시트(Grexit)’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총선은 지난해 말 의회에서 대통령 선출에 실패한 뒤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됐다. 시리자는 지난 총선에서 2위에 그쳤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1위를 놓치지 않아 선거 승리가 예상됐다. 여론조사 공표 마지막 날인 23일 발표된 주요 여론조사 결과 시리자는 32∼33.5%의 지지율로 중도우파인 집권 신민당(26∼30.1%)에 근소한 우위를 보였다. 다만 시리자가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지지율 3위의 중도 좌파 정당인 ‘토포타미’와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자는 그리스 구제금융의 대외채권단인 트로이카(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 조건이 너무 가혹하다며 재협상을 주장해 생활고에 지친 그리스인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시리자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그리스는 트로이카의 중추인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나 구제금융 기관들과 재정긴축 철회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전망이다. 그렉시트에 대해서는 섣불리 강행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그리스 국민의 3분의 2가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도 “그렉시트는 없다”며 선을 그어왔다.

총선에 앞서 안토니스 사마라스 전 총리는 당초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EU 측 구제금융 프로그램 시한을 올 2월 말까지 연장한 바 있다. 치프라스는 이를 7월까지 추가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 100억 유로(12조1932억원)의 상환이 만료되는 시기에 맞춰 트로이카와의 긴축완화·부채탕감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지난 12일 그리스 방송에 출연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협상을 거부할 가능성은 100만분의 1도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긴축정책을 포기한다면 그렉시트도 불가피하다며 강경한 입장이었다. 그런 메르켈 총리가 최근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 및 경제개혁 책임을 다해왔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해야 한다”는 유연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ECB가 지난 22일 유로화 도입 이후 처음으로 양적완화를 결정할 만큼 유로존 전반에 위기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트로이카 내 엇박자가 발생할 경우 협상이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그리스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그렉시트를 최후의 무기로 남겨두고 디폴트 카드를 먼저 꺼내들 수도 있다. 디폴트나 그렉시트 모두 유럽연합 경제체제 전반을 뒤흔드는 동시에 세계 경제에 막대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건희 기자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