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사진·음성 불명확… 日 정부에 혼란 주려는 듯

입력 2015-01-26 02:26 수정 2015-01-26 14:49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가 또 다른 인질 유카와 하루나의 살해 장면(모자이크 부분)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는 영상이 24일 공개됐다. 이 영상에는 당초 요구했던 몸값 2억 달러(2170억원)가 아닌 지하디스트 사지다 알 리샤위의 석방을 새 조건으로 제시하는 음성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연합뉴스
사지다 알 리샤위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인질 2명 중 1명을 살해한 뒤 구속 중인 여성 테러리스트 석방을 요구조건으로 내건 것은 IS의 노림수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질 석방을 위해 애를 쓰던 일본 정부와 국민들은 인질 살해 소식에 충격에 휩싸인 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인 인질 참수 공개, 사진에 음성 입힌 이례적 형식=인질 중 유카와 하루나(42)가 살해됐다며 IS가 공개한 영상은 기존에 IS가 보여주던 방식과 다르다. IS는 그간 인질을 참수하는 동영상을 게시했지만 이번에는 사진을 배경으로 음성 메시지를 씌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고토 겐지(47)로 보이는 인물은 유카와로 추정되는 인물이 살해된 장면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고토가 들고 있는 사진은 흐릿했으나 주황색 옷을 입은 인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그 옆에 주황색 옷 위로 사람의 머리 부위가 보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영상에는 “유카와가 살해됐다. 그들이 더 이상 돈을 원하지 않으니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음성이 삽입돼 있다.

영상은 유카와가 살해됐다는 사실을 고토가 전하는 형식이지만 사진이 선명하지 않은 데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판단이 어렵다.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정보를 주고 일본 정부를 혼란에 빠뜨려 상황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외무성 주임분석관 출신 작가 사토 마사루는 “(영상에)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려운 것을 포함해 ‘일본 정부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며 일본 여론의 배출구를 일본 정부로 향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방 요구받는 여성 테러리스트는 폭탄테러 전과범=IS가 공개한 영상에 나타난 목소리는 “요르단 정부에 의해 구속된 사지다 알 리샤위(사진)를 석방하면 내(고토)가 풀려날 것”이라고 새 조건을 제시했다. 사지다 알 리샤위는 폭탄테러 전과가 있는 이라크 출신 사형수다.

1970년생인 사지다 알 리샤위는 IS의 전신인 ‘이라크 알카에다’를 이끌던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의 측근 혹은 친척인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의 공격으로 숨진 무바라크 아트로우스 알 리샤위의 가족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2005년 요르단 수도 암만의 한 호텔 결혼식장에서 남편과 함께 자살폭탄 테러를 시도했다. 남편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나 자신은 폭탄이 터지지 않아 목숨을 건진 후 체포됐다. 당시 테러로 최소 60명이 사망했다. 사지다 알 리샤위는 2006년 요르단 법원에서 교수형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IS가 지난해 시리아 북부에서 붙잡은 요르단 조종사를 풀어주는 대신 사지다 알 리샤위를 석방하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돌파구 찾지 못하는 일본 정부 “그래도 테러와 협상은 없다”=일각에서는 아베 정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일본인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영상이 공개됐을 때부터 일본 정부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려 노력 중”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 그러다 IS가 제시한 몸값 협상 시한인 23일을 넘기면서 인질 살해를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 지원해온 일본이 “테러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무릅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IS와 협상을 펼칠 창구가 뚜렷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 측은 유카와 살해 영상이 공개된 이후에도 테러집단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편 영상이 공개된 이후 유카와의 아버지 쇼이치(74)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이상은 말로 표현이 안 된다”면서 “(고토가) 내 아들을 걱정해 목숨을 걸고 현지에 들어갔다. 미안하고 괴롭다”는 심경을 전했다. 고토의 부인은 유튜브에 공개된 것과 같은 영상이 첨부된 이메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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