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汪洋·60)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2박3일 방한기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국내 굴지의 재계 총수들을 거의 모두 만났다. 국내 재계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중국 시진핑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왕 부총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왕 부총리도 광둥성 당서기 시절부터 삼성·LG 등과 좋은 인연을 맺어온 ‘친한파’로 한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현대차·LG 총수, 왕양과 협력 방안 논의=정몽구 회장은 24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왕 부총리와 회동해 한·중 간 자동차산업 협력 및 교류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중국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와 서부 충칭(重慶)에 추진하는 신공장들이 중국 정부의 수도권 통합 발전 정책과 서부 대개발 정책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한·중 경제발전과 교류의 새로운 가교가 될 것”이라며 “신공장 건설이 예정대로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 부총리는 “현대차와 중국의 자동차산업 협력 관계가 30년 후는 물론 50년, 그보다도 더 먼 미래에도 지속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구본무 회장은 정 회장에 이어 별도로 왕 부총리와 만나 LG그룹 계열사들의 중국 내 사업 등과 관련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구 회장은 왕 부총리에게 “LG디스플레이 광저우 LCD 공장을 성공적으로 완공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줘 감사하다”며 “중국 정부에서 펼치고 있는 경제정책, 특히 친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 회장은 왕 부총리가 광둥성 서기로 재직하던 시절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廣州)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바 있으며, 그 이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총리는 ‘2015년 중국 관광의 해’ 선포식 참석차 지난 22일 오후 서울에 도착한 후 23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조찬 회동을 했다. 왕 부총리는 삼성 측으로부터 삼성 중국 사업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향후 중장기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 경제 실세를 잡아라”=왕 부총리는 또 24일 신라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관으로 열린 기업인 오찬 행사에 참석, 한·중 양국의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주재하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삼성전자 박상진 대외담당 사장, LG전자 신문범 사장(중국법인장) 등 국내 기업인 50여명과 중국 측 재계 인사 50여명이 참석했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도 참석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서울상의 회장단과도 환담했다.
재계 총수들이 방한한 외국 고위 인사를 앞 다퉈 만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은 우리에게 가장 큰 시장”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중국은 소비시장뿐 아니라 생산기지로서의 의미도 있어 원만한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중국은 지도자의 의중이나 ‘관계’가 중요한 나라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왕 부총리와 안면을 익혀두는 것이 앞으로 대중국 사업에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왕 부총리는 대외 개방에 적극적이며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노동자 출신으로 38세이던 1993년 당시 최연소 부성장(副省長)을 맡았다. 8700만여명의 중국 공산당원 가운데 25명뿐인 정치국 위원 중 한 명이다. 왕 부총리는 2017년 열리는 제19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총 7명) 진입이 유력시된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차이나 파워… 실세 부총리 왕양, 정몽구·구본무와도 회동
입력 2015-01-26 0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