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체 모뉴엘의 대출사기 및 금융권 금품로비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모뉴엘은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유망 수출업체로 주목받다가 지난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해 파문을 일으킨 업체다. 서울중앙지검은 25일 박홍석 대표 등 모뉴엘 전·현직 임직원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 등으로 병합 기소하면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가짜 서류로 7년간 천문학적 규모의 불법 대출을 일으킨 모뉴엘의 사기극에 국책금융기관 등이 놀아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금융기관의 부실 심사, 금융 당국의 관리감독 부재 등 후진적 금융 시스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정말 한심스럽다.
박 대표 등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허위 수출입 서류 등으로 시중은행 10곳에서 3조4000억원을 대출받은 뒤 상환기한 때마다 이를 ‘돌려막기’하면서 은행들을 속였다. 또 무역보험 및 수출금융 한도를 늘리기 위해 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수출입은행·거래업체 담당자들과 세무공무원에게 광범위한 뇌물공세를 폈다. 8억원이 넘는 로비자금 전달 수법도 다양했다. 담뱃갑과 과자·와인·티슈 상자에 500만∼1000만원짜리 기프트카드나 5만원권 현금다발을 채워 건넸다. 유흥주점 접대로 하룻밤에 1200만원을 뿌리기도 했다. 국책금융기관 임직원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문제는 모뉴엘이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국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들의 실질적 심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출 장려를 위해 도입된 무역보험·수출금융 제도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돼 왔는지 그 근본적인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엉터리 심사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해 온 금융 당국의 책임도 크다. 앞으로 무역보험 제도가 또다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보증한도 심사 기준을 강화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지원 전반에 관한 금융 시스템을 종합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신성장산업 분야 등에 올해 180조원의 정책자금을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자칫 ‘눈먼 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설] 제2, 제3의 모뉴엘 사태 막으려면
입력 2015-01-26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