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쌓은 실력으로 호텔리어 된 발달장애인 황채원씨 “장애인도 열정 갖고 일하면 꿈 이뤄져요”

입력 2015-01-26 03:04
황채원씨(오른쪽) 모녀가 지난해 12월 31일 영등포구청을 방문해 조길형 구청장(왼쪽)에게 감사의 표시로 악기의 일종인 ‘우쿨렐레’를 선물하고 있다. 이들 모녀는 구청이 장애인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민간 취업에도 적극 나서서 황씨가 호텔리어가 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은 콘래드 호텔 주방에서 컵을 닦고 있는 황씨의 모습. 영등포구 제공

황채원(23·여)씨는 여느 아이들처럼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며 소녀시절을 보냈고 피아노도 칠 줄 아는 평범한 아이였다. 일반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성광행복한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할 만큼 성실하고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학원까지 다니며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등 사무실 근무에 필요한 기초 업무 능력도 두루 갖췄다. 이제 취업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어도 빵집,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장애는 그녀에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었다.

심각한 청년취업난 속에 장애인이라는 편견은 그녀를 더욱 위축시켰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

열정으로 가득한 그녀에게 한줄기 희망이 비쳤다. 영등포구청에서 서울 자치구 중 처음으로 함께 일할 장애인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내걸린 것이다.

황씨는 지체 없이 공모에 응했고 당당히 합격했다. 7주간의 실무훈련을 거쳐 2013년 1월 시간계약직 근무를 시작했다. 그녀가 맡은 일은 구청 ‘목련쉼터’에서 여직원들을 위해 커피를 내리는 등의 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츰 업무에 적응해가며 자신감을 얻었다. 평소 자신을 잘 가꾸지 않았던 그녀는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직원들에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느덧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사라지고 오래된 직원처럼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그동안 꿈꿔온 호텔리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호텔 ‘콘래드 서울’이 지난해 11월 영등포구청과 체결한 장애인 취업 관련 협약서(MOU)에 따라 장애인을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 호텔이라고 하면 화려한 외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장애인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조길형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회사 관계자를 설득했다. 직접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단순한 업무에 있어서는 오히려 장애인이 요령을 피우지 않아 업무 성과가 더 좋을 것이라는 점을 조 구청장은 강조했다. 구청의 노력으로 그녀는 면접 기회를 얻었고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마침내 취업에 성공했다. 구청에서 일하는 동안 배웠던 서비스 정신과 대인관계를 통해 길러진 사회성이 큰 힘이 됐다.

지난 5일 첫 출근을 한 그녀는 호텔 주방에서 식기를 비롯해 포크, 나이프 등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두 달간 수습기간이 끝나면 정식 부서에 배치될 예정이다.

황씨는 25일 취업을 희망하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찾아서 하는 습관을 들이며 열정을 갖고 노력하면 반드시 꿈은 이뤄질 것”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영등포구는 2013년부터 매년 5명씩 발달장애인을 채용하고 있다. 지금도 10명의 장애인이 구청에서 시간계약직으로 일하며 더욱 큰 꿈을 키워가고 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