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부러운 미국 경제

입력 2015-01-26 02:20

“오바마의 ‘모조’가 돌아왔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에 대해 한 언론은 이렇게 평가했다. 모조(mojo)는 매력, 마술적 힘을 뜻한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야당에 내준 ‘레임덕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오바마 대통령 모조의 최대 이유는 활황으로 향하는 미국 경제다. 같은 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5%로 전망해 3개월 전보다 0.3% 포인트 내렸다. 그러나 IMF는 미국의 성장률 예상치는 3.6%로, 종전보다 무려 0.5% 포인트 올렸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미국 경제가 ‘나 홀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본 것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은 실업률도 올해 5%대 초반으로 떨어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대 고용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하락이라는 행운도 겹쳤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자부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7000억 달러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3차례 경기부양책을 시행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경제회복의 최대 공신은 벤 버냉키라는 탁월한 경제학자가 이끈 연준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버냉키 전 의장은 재정 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책이 공화당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고 ‘제로(0) 금리’로 전통적 금리 정책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양적 완화’라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유동성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공화당이 추가 부양책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면 미 경제가 지금처럼 회복하지 못했을 게 확실하다. 마리오 드라기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뒷북대응과 대조된다.

미 정치권의 극한 대립도 ‘연준의 자율성’이라는 ‘국기(國基)’를 건드리진 않았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세계적 권위자인 버냉키 등 경제·금융 분야 최고수들이 외부의 간섭 없이 전문성과 객관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작동했다. 대통령도 의회도 연준의 정책 방향에 간섭하는 선을 넘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세계 최고의 ‘혁신 경제’는 먼저 일어나 미국 경제 회복을 선도했다. 이는 스티브 잡스 같은 뛰어난 개인 때문이라고 할 게 아니다. 공정경쟁과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라는 시장질서의 기본을 유지하려는 미국 정책 당국의 감시의 눈이 이러한 혁신 생태계를 뒷받침했다.

반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했던 한국 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추락하고 있다. ‘엔화 가치 강세’라는 생각지도 않은 행운에 도취돼 우리 정책 당국이 가계부채 축소와 기업 구조조정,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한국 경제의 밀린 숙제를 처리할 호기를 놓쳤다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이 2010년 퇴임한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의 선견(先見)이다. 그는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기업 구조조정의 시급함을 여러 차례 경고하면서 이를 위해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기확장에 올인한 이명박정부는 금리 인상 움직임에 강력히 제동을 걸었고 이 전 총재에게 사퇴 압력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은이 미국처럼 정치권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면 현재처럼 경제부처와 한은의 정책수단이 고갈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기적 정치 일정과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는 중앙은행제도, 그리고 공정경쟁과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자본주의 기본 질서의 중요성을 미국 경제의 부활은 다시 한번 증명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