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22일 양적완화를 전격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매월 600억 유로 규모의 국채 매입으로 총 1조 유로가 넘는 천문학적 금액을 풀겠다는 조치가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경제가 이번 조치로 되살아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유럽까지 돈 풀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세계가 ‘환율전쟁’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요국 증시 일제히 ‘환영’=ECB가 밝힌 국채 매입 규모는 오는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모두 1조1400억 유로(약 1400조원) 수준이다. 전체 규모로는 미국이 2012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시행한 3차 양적완화(QE3) 당시 1조6300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기간을 고려하면 미국과 맞먹는다고 볼 수 있다. 당초 예상치를 웃돈 발표에 주요국 증시도 일제히 상승했다. 영국(1.02%) 프랑스(1.52%) 독일(1.32%) 등 유럽 증시뿐 아니라 미국도 S&P500(1.53%), 다우지수(1.48%)가 1% 넘게 상승했다. 뚜렷한 모멘텀을 찾지 못하던 코스피지수도 23일 0.79% 올랐고 일본 증시는 1.05% 상승했다.
교보증권 임동민 연구원은 “자산 매입을 처음 시행한 유럽중앙은행이 미 연준의 3차 양적완화만큼이나 강력한 조치를 실행한 것으로 본다”며 “디플레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ECB는 내년 9월까지도 인플레이션율 목표치(2%)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양적완화 기간을 연장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하지만 ECB의 돈 풀기가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이 구조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유럽 경기가 단기 모멘텀을 얻을 가능성이 있지만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미국 같은 신산업 사이클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양적완화 효과가 일본의 아베노믹스처럼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환율전쟁 우려 속 국내 증시 자금 유입 기대=유럽의 양적완화로 국제금융시장에는 환율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달러화 대비 유로화 환율이 최저 수준을 지나 ‘등가’(1유로=1달러)에 근접한 탓에 세계 주요국들도 환율 방어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유로 환율은 장중 유로당 1.1404달러까지 떨어지며 2003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 다른 나라들도 자국 통화 약세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미 스위스가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최저환율제를 폐지했고, 일본의 양적완화로 엔저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면 국내 주식·채권시장에도 유럽계 자금이 유입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유로화 약세로 유로 캐리트레이드(싼값에 빌려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 자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아이엠투자증권 임노중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려면 경기나 기업실적 개선 등의 선행조건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경우 해외에서 보는 기대수익이 낮아지고 있어 유럽에서 돈을 풀더라도 자금 유입이 제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유럽 양적완화 파장] 공급 규모 예상치 크게 웃돌아… 주요국 증시는 환영
입력 2015-01-24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