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매직… ‘슈틸리케 드라마’에 푹 빠진 축구팬

입력 2015-01-24 01:36

한국 축구팬들이 ‘슈틸리케 드라마’에 푹 빠졌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 대표팀을 2015 호주 아시안컵 4강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한 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 같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0일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대 0으로 이긴 뒤 “근소하게 이기고 어렵게 경기한 게 오히려 5대 0 대승을 거둔 것보다 낫다.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고 우승 후보 얘기가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오만을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는 지적에 대해 “오늘 우리 활약이 그렇게 나빴다고 보지 않는다”며 풀이 죽어 있는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13일 약체 쿠웨이트와의 2차전에서 간신히 1대 0으로 이긴 뒤엔 “오늘 경기를 계기로 우리는 우승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투혼을 앞세우는 한국 축구 특유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한 것이다. 선수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심리전이 먹혀든 것일까. 태극전사들은 3차전에서 난적 호주를 상대로 1대 0으로 승리하며 자존심을 되찾았다. 이청용(볼턴)이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고, 구자철(마인츠)마저 다쳐 교체됐지만 선수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결승전처럼 경기를 치렀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오늘 보여 준 모습이라면 앞으로 대회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한국의 상승세는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도 이어졌다. 골 결정력이 부족했고 수비도 흔들렸지만 결국 손흥민(레버쿠젠)의 결승골과 추가골로 2대 0 승리를 거뒀다. 슈틸리케 감독은 “정신력을 강화해 싸워준 점에 대해 우리 선수들에게 칭찬밖에 해줄 게 없다”고 활짝 웃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 대동한 선수들이 맹활약한 것도 신기한 일이다. 오만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중원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 주며 흔들리는 팀의 중심을 잡았다. 쿠웨이트전엔 차두리(FC서울)가 기자회견에 나섰는데, 공교롭게도 남태희(레퀴야)의 결승골을 도왔다. 호주전 공식 기자회견에 선수대표로 참석했던 곽태휘(알 힐랄)는 호주의 거친 공격을 잘 막아냈다. 우즈베키스탄전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연장전에서 두 골을 터뜨린 손흥민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예언가가 아닌데 어찌된 일일까. 대표팀 관계자들은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 덕분에 꿰뚫어 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부진에 빠져 있는 선수는 언론 앞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그런 선수를 기자회견장으로 데려가곤 한다. 우즈베키스탄전을 치르기 전 A매치 10경기 무득점이던 손흥민의 경우가 그러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을 기자회견장으로 데려가 책임의식을 심어 줬고 손흥민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어떤 선수를 대동하고 4강전 기자회견장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과 벌이는 심리전은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26일 시드니에서 열리는 한국의 4강전. 경기가 끝난 뒤 박수가 터질까, 정적이 흐를까. ‘슈틸리케 드라마’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