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성숙한 제자

입력 2015-01-24 01:01

오늘 본문의 핵심은 15절에 나온 ‘성숙’입니다. 성공했다고 반드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성장했다고 성숙한 기업이라 할 수 없고, 교회가 성장했다고 성숙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성장한 교회가 한국교회에 크게 기여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빛 된 사명을 잃고 방황하는 곳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녀가 나이는 먹었는데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다면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덩치가 커도 귀히 쓰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자기 그릇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릇이란 인격을 말합니다. 외모가 좋고 많이 배웠어도 인격이 부족하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괴수’로, 선지자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겸손한 고백으로 이들은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고백할 수 있는 지도자가 곳곳에서 일어난다면 다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둘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소유나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사는지가 누구인지를 결정합니다. 직장을 옮겨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를 옮겨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시 교회를 옮기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앙생활 몇 년 했다’ ‘목회 몇 년 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안다는 생각, 이를 잊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무언가를 가졌고 알고 있다면 공동체를 위해 베풀고 섬겨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누가 크고 작으며, 신앙이 누가 먼저고 나중이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막 10:31)고 말씀합니다.

셋째, 아프고 병들고 신음하는 소외 이웃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 심정을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치로 시련을 겪어본 사람만이 고난당하는 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잘나가고 높은 사람의 소리만 들으신 게 아닙니다. 가난하고 병들었으며 아프고 귀신들린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이들을 찾아가 치유하시고 위로했습니다. 소외된 자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본문이 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할 것’과 ‘사용할 것’을 구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사람입니다. 반면 사용해야 할 것은 물질입니다. 이 둘이 바뀌면 인격도 품위도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사용해야 할 것을 사랑하면 썩게 되고, 사랑해야 할 것을 이용하면 추하고 더러워집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삶만이 본문이 말하는 성숙한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조영성 시흥 드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