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면적인 양적완화에 나섰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 등의 방식으로 시중에 통화를 직접 공급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이다. 즉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일본, 영국 중앙은행이 단행한 바 있다.
ECB는 22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국채 매입 방식의 양적완화를 단행키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오는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매월 600억 유로(75조5000억원)씩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총 19개월 동안 1조1400억 유로(1435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다. 시장 예상치(5000억∼6000억 유로)를 훨씬 뛰어넘는 액수여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심각하게 기력이 쇠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에 숨을 불어넣고 디플레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결단이다. 유로존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0.2%를 기록하면서 공식적으로 디플레 국면에 진입했다.
ECB는 지난해 두 차례(6, 9월) 기준금리를 내리고 유동성 공급정책도 내놨지만 결과적으로 디플레를 막지 못했다. 현재 ECB 기준금리는 연 0.05%다. 이 같은 초저금리 상태에서 금리를 더 내릴 수도 없으니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양적완화가 실제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지 않고 경기를 살리겠다는 ‘신호’만 준다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하지만 ECB가 그런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냈다는 것 자체가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고, 글로벌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공급된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유로존 은행들은 ECB가 푼 자금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데, 대출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 자금이 주식·채권 등 자산시장으로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불어난 유럽의 유동성 중 일부가 한국 증시로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유럽의 유동성 확대 국면에서 유럽계 자금은 5조6000억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사들였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은 “2012년 유럽계 자금의 순매수 상황이 이번에 재현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때보다 강한 확산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마냥 호재만은 아니라는 신중론도 있다. ECB가 돈 풀기를 시작하면 유로화 가치가 더 떨어질 테고, 이 경우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여 우리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매월 600억 유로씩… 유럽중앙은행, 돈 퍼붓는다
입력 2015-01-23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