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갔다. 그릇된 현실 인식과 맹목적 북한 추종 성향은 소속 정당의 강제해산을 초래했고, 자신은 2022년 9월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결과를 낳았다. 올해 53세인 이 전 의원은 징역 9년에 더해 자격정지 7년도 확정돼 67세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정치 생명도 사실상 끝난 셈이다.
이 전 의원은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89년 남한 사회주의혁명 실현을 내건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했다. 반제청년동맹은 1927년 김일성 주석이 중국에서 조직한 청년혁명조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992년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가 조직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2003년 3월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그러나 5개월 뒤 가석방됐으며 2005년 8·15특사로 복권됐다.
대법원이 22일 사실로 인정한 내용과 민혁당 사건 당시 1·2심 판결문(상고 포기)을 보면 이 전 의원의 의식구조는 지하혁명조직의 간부로 암약할 때나 국회의원이 된 뒤에나 변함이 없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미 제국주의 식민지배 하에 있고, 폭력혁명을 통해 전복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게 그의 기본 인식이었다.
민혁당 활동 당시 이 전 의원은 “남한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를 몰아내고 자주·민주·통일의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남한의 혁명운동을 북한의 혁명 역량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는 2013년 5월 12일 비밀회합 때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 전 의원은 연단에 서서 “우리가 싸울 대상은 북한이 아니라 외래 침략자, 미국이다” “미국놈들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 우리 동지부대가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선두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명예가 아닌가”라고 ‘선동’했다.
이 전 의원은 2003년 출소 이후 민혁당 잔존 세력 등을 규합해 민족해방(NLL) 계열 ‘경기동부연합’을 장악한 뒤 민주노동당에 들어갔다. 민노당은 이후 1·2차 분당과 재창당 등을 거쳐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NL 계열만 남은 통진당이 됐다. 이 전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지만, 공안 당국은 이미 2010년부터 그의 이적행위에 대한 내사에 들어간 상태였다. 검찰은 2013년 9월 그를 내란음모·선동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가 ‘혁명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던 통진당과 동료 의원들은 지난해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명령에 따라 문을 닫고 국회의원직을 잃었다. 헌재가 판단의 결정적 근거로 삼은 것은 이 전 의원이 주도한 ‘5월 회합’에서의 논의 내용이었다.
지호일 나성원 기자 blue51@kmib.co.kr
[이석기 내란선동 유죄] 의원 된 후에도 ‘남한은 전복시켜야 할 대상’
입력 2015-01-23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