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평생 서평을 썼다. 생전에 발표한 서평이 3000여개에 이르고 책으로 5권 분량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창작과 번역을 병행하는 것처럼 헤세는 창작과 서평쓰기를 같이 한 모양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요즘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는 주로 서평을 쓰는데, 독자들은 그의 서평을 예리한 시사칼럼으로 소비하면서 환호한다.
서평은 주변적인 글쓰기로 취급받기도 한다. 서평집이 본격적인 독서의 대상이 된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나 어떤 서평은 한 권의 중요한 책이 되기도 한다. 여기 소개하는 두 권의 서평집이야말로 그렇다.
#서평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최근 출간된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헤세가 스물세 살부터 죽기 전까지 60여년에 걸쳐 쓴 서평 가운데 73편을 뽑아 수록한 책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가 왜 그토록 오래 서평을 썼는지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글은 없다. 다만 글 속에서 간간이 내비치는 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헤세는 “사랑에서 생겨나지 않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없듯이, 예술작품에 대해 다시 사랑 말고는 어떤 고귀한 후원의 관계도 없다”고 썼다. 번역자 안인희씨는 “전쟁 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그는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꾸준히 독서 안내자 역할을 했다”면서 “이는 그가 이 세상과 젊은이들에게 바친 순수한 봉사이며 숭배였다”고 해석했다.
헤세는 기본적으로 좋은 책들을 골라서 추천하는 방식으로 서평을 썼다. 당시 헤세가 고른 책들은 세월에 스러지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읽히고 있다. 1920년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이 독일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 쓴 서평에서 헤세는 이 책을 ‘미래의 학문’으로 정의하고, 논란에 휩싸인 프로이트를 열정적으로 옹호한다. 또 당시 성적인 이유로 금지되고 추방되었던 D. 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대해 “이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가 마침내 일반에 공개된 지금 독일에서 고집스럽고 사랑할 만한 작가 로렌스의 작품을 읽는 수많은 독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헤세는 위대한 작품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서평가의 일이란 걸 알려준다. 헤세는 그 스스로 거장이었고, 그가 다룬 작가들 중 그보다 나은 이가 많지 않았지만 좋은 책 앞에서 순전하게 경탄을 바치는 사람이었다.
세 개의 파트로 나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동양에서 나온 책들에 대한 서평이다. 그는 중국과 인도, 일본, 이집트의 문학과 철학, 종교 서적들을 읽고 소개했다. 그는 다른 세계에서 온 낯설고 어려운 책이라도 지적 자극, 두 세계의 통합가능성, 자연과 예술 앞에서의 겸손 등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읽기를 권했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에 앞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얘기는 헤세의 서평이 아찔하도록 아름답다는 점이리라. 저널리즘을 위해 쓴 글이 이토록 정교하고 우아할 수 있다니.
#서평이 이토록 날카로울 수 있다니
‘정희진처럼 읽기’는 팬덤을 거느린 서평집이다. 지난해 10월 말 출간된 이래 꾸준히 팔리고 있다. 출판사 교양인에 따르면 정희진이 신문에 쓰는 칼럼들을 읽고 책을 주문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정희진처럼 쓰기’도 출간 예정이다.
정희진은 여성주의적 시각이 유효하다는 증거가 되고 있는 글쟁이다. 정희진의 서평은 만지면 베일 듯이 날카롭다. 쓰리고 뜨겁다. 그것은 그가 책과 시대 사이에서 외롭고 아프게 고민하면서 오래 다듬어온 생각들을 짧고 낯설고 과감한 문장으로 터트리기 때문이다.
“삶이란 나는 남고 내게 의미 있는 관계자들은 떠나는 과정이다” “안락사를 생명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생명을 무시하는 태도다. 문제의 본질은 생명이 아니라 고통이다” “김훈은 소설, 논픽션, 기사, 수필을 불문하고 모든 글을 잘 쓰는 예술가다” “낟알을 입 안에 오래 담을 수 있는 만족감을 여러 사람이 나누기 위한, 그 겨울 벌교 벌판의 사회주의”같은 문장을 읽고 어떻게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고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책이 있다”고 말하는 애서가지만, 그의 서평은 책 자체보다 책이 놓인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을 겨냥한다. 그는 주제나 소재가 아니라 관점을 중심으로 읽고 쓴다. 그래서 칼럼 분량의 그의 서평에서 책에 대한 얘기는 많지 않다. 그는 책을 소개하는 목적으로 서평을 쓰지 않는다. 책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위한 매개로 사용된다. 그래서 그의 서평은 책을 읽는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좋은 글은 용감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은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훨씬 깊게 인간의 삶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세상 위해 바치는 순수… 서평은 날 선 사랑이다
입력 2015-01-23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