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A씨(59·여)는 지난해 12월 주거래은행에서 주가연계증권(ELS)과 정기예금에 가입하려다 퇴짜를 맞았다. 은행 직원은 A씨가 마이너스통장을 전달 갱신해 대출 전후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한 구속성 예금(꺾기) 규제에 걸린다고 설명했다. 만기가 된 ELS를 활용하려던 A씨는 본인 의사로 가입하는 것도 안 되느냐고 따졌지만 직원은 시스템상 가입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은행권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출자를 상대로 예·적금 등 금융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관련 대책이 불합리한 일괄 규제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약자인 중소기업과 저신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지만 당국이 규제 방침만 앞세우는 보신주의적 행태가 굳어진 탓이다. 은행 창구에서는 자발적으로 상품에 가입하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은행법 시행령과 은행업 감독규정을 개정하는 등 꺾기 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개정안에서는 대출고객 의사와 관계없이 대출 전후 1개월 내 판매한 예·적금 월수입금액이 대출액의 1%를 초과할 경우 꺾기로 간주하고, 보험·펀드는 대출액 대비 비율이 1% 미만이더라도 꺾기로 보고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융 당국은 꺾기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마땅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이나 저신용자들은 ‘갑(甲)’의 지위에 있는 은행권이 권유하는 금융상품을 거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2일 “규제가 심해서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장점이 더 많다고 본다”며 “이를 각각의 유형별로 세밀하게 골라내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금감원은 기존에 은행권 꺾기 규제를 담당하던 금융서비스개선국이 지난해 4월 조직개편으로 없어지면서 총괄담당이 없다. 현재 일반은행검사국과 특수은행검사국, 기획검사국 등으로 기능이 분산돼 은행별 종합검사나 테마검사 때 규제 시스템을 확인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규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불편에 대해 사후관리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어려운 셈이다.
대출 전후 일정기간을 기준으로 무작정 규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당국의 규제 방침이 감독편의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를 일부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은행 갑질 막으려다 乙 잡는 ‘꺾기’ 규제
입력 2015-01-23 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