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해외 직구 쇼핑몰 ‘한탕 유혹’… 진화하는 다단계 덫

입력 2015-01-23 00:11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개인사업을 하는 임모(65)씨는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어느 한국계 고객에게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자신을 제니퍼 김(가명)이라 소개한 50대 여성은 ‘신개념 비즈니스’라며 “330만원만 내면 가만히 앉아서 매월 수천∼수십만 달러를 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설명한 비즈니스 모델은 이랬다. 미국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글로벌 업체가 해외 명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해외 직구(직접구매) 쇼핑몰을 임씨 같은 개인에게 개설해주고 운영까지 도맡아주는데, 쇼핑몰 수익을 공유해 다 함께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임씨가 또 다른 쇼핑몰 사업자를 끌어오면 그 수익도 배분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쇼핑몰 네트워크(다단계) 사업’이었다.

임씨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제니퍼 김이 매달 찾아와 돈이 다달이 불어난 통장 계좌를 보여주자 마음이 흔들렸다. ‘300만원 정도야….’ 지난해 8월 반신반의하며 돈을 부친 임씨는 4개월 뒤 알게 된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제니퍼 김이 소개한 업체는 무허가 다단계 사업자로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서 영업정지를 당한 상태였다. 투자금은 고스란히 날아갔다. 제니퍼 김을 찾으려고 수소문하는 임씨에겐 그가 비슷한 수법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한다는 소문만 들려왔다.

불황과 취업난, 그리고 사람들의 ‘한탕 심리’를 악용한 신종 불법 다단계 수법이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해외 직구 열풍을 이용한 쇼핑몰 개설, 게임 아이템 거래, 전문 금융투자기법을 앞세워 투자금을 모으는 유사수신행위 등 경찰이 지난해부터 파악한 신종 수법만 수십 가지나 된다.

이들은 직접 상품을 팔 필요 없이 ‘가만히 앉아’ 다른 사업자들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운영은 다른 사업자가 알아서 하기에 기존 다단계처럼 실적에 목맬 일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일정 목표를 맞추려고 자기 돈을 갖다 부을 일이 없다는 말에 안심하고 투자한다. 그러나 토지 거래와 유사수신행위처럼 상품이 아닌 것을 거래하는 다단계 업체는 불법이다. 정상 거래로 보이려고 형식적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해외 직구 쇼핑몰 등 불법 네트워크 업체를 수사 중”이라며 “이들 업체는 미국 등 외국에 서버를 두고 국내에선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어 규모 파악이 어렵다”고 22일 말했다. 그는 “피해 금액이 130만∼340만원으로 비교적 소액이라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반면 신고하는 사람 중엔 수사관에게 무조건 ‘내 돈 돌려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 관계자는 “피해를 예방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 인가를 받아 설립된 공제조합에 가입된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정상적으로 신고하는지 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사기·횡령 등을 수사하는 일선 경찰서 경제팀 인력을 2017년까지 1500여명 늘릴 계획이다. 손제한 경찰청 수사연구관실장은 “신종·변종 경제사범이 크게 늘고 있어 만성적 인력 부족을 겪는 경제팀의 수사 인력을 대폭 확대하고 변호사 특채자 등 전문 역량을 갖춘 수사관을 집중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