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상을 뒤흔들던 특수부 검사 출신답게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두 달여 전 사장에 취임했지만 검사가 사건 조사하듯 내부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강원랜드 운영이 허점투성이라며 분개했다. 곧바로 조직 개편을 통해 낙하산으로 들어온 임원이나 감사를 모두 물갈이하고 일하는 사람으로 충원했다고 했다. 줄줄 새는 예산을 없애고, 지역에 보탬이 되는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20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가장 큰 현안이 뭔가.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1700억원을 들여 워터파크를 짓는 계획이 진행 중이다. 터파기 공사를 하다 겨울철이라 멈춰 있고, 시공사인 동부건설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황이다. 그런데 사업 타당성 보고서를 보면 1년에 85만명의 물놀이객이 온다는 전제 하에 연 50억원 수익이 난다고 분석을 해놨더라. 어떻게 1년에 85만명이 올 수 있나. 사업을 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시장 조사임에 틀림없다. 1년 강원도 관광객 중 7%, 전국 물놀이시설 방문객의 5%가 여기에 올 것이라고 돼 있는데 근거가 없다. 타당성 조사 한번 하면 몇 십억원씩 나간다. 끼워 맞춘 용역에 거액을 준다는 게 말이 되나. 게다가 짓고 나면 엄청난 적자가 누적될 것이다. 또 이 지역은 7∼8월에도 지하수를 퍼올려보면 온도가 22도 미만이다. 물놀이를 하려면 27도 이상이 돼야 한다. 한여름에도 5도 이상을 데워야 하는데 강원랜드는 카지노에서 전기를 엄청나게 많이 쓰기 때문에 온실가스 과다배출 업소다. 반환경 업소가 되는 것이다. 사업을 축소시킨 뒤 그 돈으로 친환경적인 하드웨어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강도 높은 조직 개편을 하고 있다는데.
“그동안 부장급 감사실에서 내부적인 조사를 맡아왔는데, 지금 감사를 본부로 승격해 상무급이 본부장이 된다. 정부기관에서 대북 정보활동을 한 사람이 왔다. 그쪽에서 평가가 아주 좋은 사람이다. 상습적으로 말썽 일으키는 직원들을 1년 내내 사람과 기계가 끊임없이 추적해 견디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동안 상무급 본부장 자리에 의원 보좌관이나 산자부 서기관·사무관 출신들이 와서 일했는데 격이 너무 낮았다. 직급이 낮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좁다. 임원 공모를 해보니 굴지의 대기업 사장, 군 장성 출신 등이 오더라. 과거에는 강원랜드가 정권의 전리품이었다. 공기업이 전부 그랬다.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지 않느냐. 일하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물갈이를 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에서 행정관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들은 공개경쟁을 통해 검증받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소개된 사람들이다. 정부부처 서기관이나 사무관들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이 많다. 도덕적 검증이나 따로 교육도 안 받는다. 강원랜드에도 청탁으로 들어온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선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데 길들여져 있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약하다. 그런 친구들이 선거에서 청와대로 들어가 실세가 되고, 심지어 강원랜드 상무를 하고 본부장도 한다. ‘선거판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정권의 전리품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고에서 뭐가 나오겠나.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고생한 보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국가나 공기업 운영의 핵심은 공익성이다. 공익성은 공정하고 투명할 때 보장되는 것이다.
-카지노에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양양공항 접근성이 좋아야 할 텐데.
“양양공항은 강원랜드에서 너무 멀다. 정부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2∼3개 리조트를 짓는다면 그중 1개 비용은 기존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 삼척과 직선거리가 30분에 불과한데 꼬불꼬불해서 1시간20분 걸린다. 여기서 삼척까지 고속화 도로를 닦아주면 양양까지 1시간 안에 갈 수 있다. 7000억∼8000억원이면 공사가 가능하다. 연차공사로 3년 내 공사를 하면 동계올림픽 빙상경기가 열리는 강릉까지 지금보다 30분 이상 가까워진다. 경기장 시설을 이용하고, 강원랜드에서는 쉬기도 하고, 밤에는 카지노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두고 있는 사업 구상은 있나.
“탄광 트레킹 길이 40㎞가 넘는다. 석탄이 나오면 트럭으로 실어서 옮겼을 텐데, 이 길을 일제 강점기에 닦았다. 50년대 60년대 개발한 탄광도 있다. 일본이나 서독으로 간 광부들만 슬픈 역사가 있는 게 아니다. 여기가 더 슬프다. 1000m 고지가 넘는 산에 40㎞ 넘는 트럭 운반길을 불도저도 없이 삽과 곡괭이로 닦았다. 거기 동원된 인부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겠나. 단순 트레킹 길이 아니라 과거 연탄에 대한 슬픈 역사 스토리도 만들고, 이를 미래 에너지로 바꾸는 산 교육장으로 만들겠다. 더 이상 철근 콘크리트 하드웨어를 짓지 말자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활용해 친환경 복합 리조트를 만들어가야 한다.
안티에이징 클러스터도 생각해볼 수 있다. 미래 먹거리는 메디케어, 바이오 메디다. 고산지역에는 안티에이징 성분이 있는 식물이 많다. 그게 상품화되면 이 일대는 대량 생산지가 될 수 있다. 투자를 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옛날식 공장을 생각하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미래 성장동력만 따지면 개발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널려 있다.
-검사 경력이 사장을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나.
“뛰어난 검사는 정보력이 많아야 한다. 저런 게 왜 엉뚱한 데 들어섰을까. 누가 생뚱맞은 건물을 지었을까. 무슨 공사 해서 돈을 얼마 먹었을까라는 식으로 사물에서 문제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정보력이다. 판단능력도 중요하다. 뛰어난 CEO는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두고 보자’ ‘사업 타당성 검토를 해보지 뭐’ 이런 식으로 미적거리면 그 사이 다른 사람이 다 채간다. 그런 면에서 검사 경력이 큰 도움이 된다. 강원랜드는 돈이 있는 기업이니까 도덕적 기반이 다 무너졌다. 본인이 직접 해먹은 사람, 본인이 안 해먹었더라도 갖가지 구실로 뜯어먹는 사람이 임자가 된 기업이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썼으면 나름 이해되는데 개처럼 벌어서 개같이 썼다. 모든 걸 뜯어고치려고 한다.
정선=노석철 사회2부장 schroh@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노석철 사회2부장이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을 만나다
입력 2015-01-23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