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이 뜨고 있다. 주인공이 부럽지 않다. 바야흐로 조연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표적인 조연배우를 꼽으라면 오달수를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올해 ‘국제시장’까지 총 39편에 출연했다. 지난 3일 ‘국제시장’이 700만을 넘어서면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누적 관객 1억 돌파의 주인공이 됐다.
오달수는 1000만 클럽에 가입한 작품만 ‘국제시장’을 비롯해 ‘도둑들’(2012년·1298만), ‘7번방의 선물’(2013년·1281만), ‘변호인’(2014년·1137만) 등 4편이다. ‘괴물’(2006년·1301만)에서는 괴물의 목소리로 출연했다. ‘변호인’ ‘관상’ ‘괴물’ ‘살인의 추억’ 등 대박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충무로 최고의 흥행배우 송강호의 누적 관객이 9200만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약방의 감초 같은 배역으로 재미를 선사하는 그는 한 번 보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캐릭터다. 코믹한 얼굴과 코 옆의 커다란 점이 트레이드마크다. 누적 관객 1억 돌파는 꾸준한 작품 활동, 탄탄한 연기력,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 등 삼박자가 고루 갖춰지지 않으면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한 후 쏟아 부은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다.
중견 배우 이경영도 단골 조연으로 캐스팅 1순위다. 그는 지난해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제보자’ ‘타짜: 신의 손’ ‘패션왕’ 등 9편에 출연하고 현재 상영 중인 ‘허삼관’에도 나온다. 한국영화는 그가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구분될 정도로 다작이다.
여성 배우 중에는 김영애가 있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연기생활에 복귀한 그는 지난해 ‘변호인’에서 사람 좋은 국밥집 주인으로 1000만 관객을 찍었다. 이후 ‘우리는 형제입니다’ ‘카트’ ‘현기증’ ‘허삼관’ 등에서 개성 있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때로는 자상한 이미지로, 때로는 강렬한 모습으로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연기력 때문에 그를 찾는 감독이 많다.
‘명량’의 조진웅, ‘해적’의 유해진, ‘타짜’의 김원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곽도원, ‘군도’의 이성민 등도 얼굴을 확실히 각인시킨 조연배우들이다. 영화 흥행에 조연배우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몸값도 오르는 추세다. 인기 조연배우의 출연료는 최고 2억원에 달한다. 요즘 주목받는 조연은 5000만∼1억원을 호가한다. 일부 조연은 주연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영화의 전체 스토리는 주인공이 이끌어 가지만 소소한 재미와 유머를 선사하는 조연배우의 활약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과도 맞물려 있다.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서 여기에 부합하는 조연들이 뜨고 있는 것이다. 단역 내지 조연이더라도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겹치기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다. 또 아무리 탈바꿈을 시도하더라도 비슷한 캐릭터로 식상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영화사 대표는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는 일단 믿음이 가고 연기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캐스팅하게 된다”며 “그런 배우가 많지 않아 어느 정도 검증된 배우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지금은 ‘명품 조연’ 시대] 주연보다 더 관객의 시선을 훔치다… 그대 이름은 ‘신 스틸러’
입력 2015-01-31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