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북유럽 복지에 관해서는 가장 인상적인 문구다. 물과 나무 이외의 자원이 빈곤한 핀란드는 그래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인적 자원이 곧 그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대학원까지 교육비가 무료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복지 혜택이 요원한 여행자가 장기간 머물기엔 그리 녹록지 않다. 비싼 물가 때문이다. 2011년 11월 나는 일찌감치 안락한 여정을 체념하고 이곳의 매서운 추위와 맞서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경건의 모양만 외식으로 갖춘 날라리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겸허해지는 환경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는 한눈에 봐도 시원하고 멋진 헬싱키 대성당이 있다. 핀란드의 국기 이미지답게 흰색과 옅은 청색이 조화로운 신고전주의 형식의 건축물이다. 핀란드의 국교인 루터회에 속해 있는 이 교회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배가 아닌 나들이나 관광이 목적이다.
이곳의 기독교 통계는 참 아이러니하다. 예배 출석률은 3% 이하로 낮지만 겉보기와 다르게 80% 이상이 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에 소속되어 있고, 교회와 관련된 세금을 내고 있다. 그런데 “신을 믿는가?”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 비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단다. 그렇게 멋진 대성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냉담한 이 괴리의 표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 풍부, 인간 중심의 합리적 사고가 신이 없어도 삶이 풍성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기는 사고 때문이 아닐까? 복음의 기쁨이 스며든 삶보다는 인간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는 세대에서 신앙을 전하고 나누는 것이 참으로 척박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만난 루터교회에서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도 그 감동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뜻밖의 만남을 허락해주셨다. 적은 이민자 탓에 당연히 한인 교회가 없을 줄 알았던 이곳에서 김일수 목사님을 만난 것이다. 주중에는 새벽같이 나가 일을 하고, 주중에는 이곳에 유학생들과 주재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목회자도 힘껏 일을 해야 조그만 상가건물을 빌려 겨우 공동체를 섬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욱 성도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설교가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의 높은 물가 때문에 반드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예배자는 교회 예배당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거칠게 삶으로 부딪혀야 했다. 권위주의가, 관료주의가, 특권의식이 나올 수 없는 건강한 목회가 되었다. 작은 공동체는 서로의 어려움을 헤아리며 단단히 여물어가고 있었다. 목사님은 먼저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 줬다. 그의 핀란드인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나그네를 섬기는 일에는 남녀와 국적의 의견이 갈리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법만 있을 뿐이다. 대접받으려는 문화에 익숙한 목회 현장에서 도리어 가난한 이웃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목회자를 보며 뜨거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며칠만의 샤워란 말인가.
기독교가 역사만 남고 예배는 사라지며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 냉담해진 북유럽에서 나는 아직 예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사역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기도와 말씀이 삶의 예배가 되어있는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화려한 예배당 건축과 갖은 예배 프로그램이 횡행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어가는 한국 교회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밖에서도 진정한 진리의 삶을 살게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깊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재할까 묵상해 본다. “나는 진리를 심장에 품고 변화가 되었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서서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하는 치열한 무대에 초대받았다. 경건의 모양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끝났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
[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0) 무엇이 교회일까 - 핀란드 헬싱키에서
입력 2015-01-24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