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감찰 시스템 구멍… 사전 조치 全無

입력 2015-01-22 03:28
현직 판사가 사채업자에게 수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데는 사법부 내부의 허술한 감찰시스템이 한몫했다. 대법원은 법관 비위 및 윤리강령 위반 사항 등을 살피도록 법원행정처 소속의 윤리감사실을 두고 있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1년 이후 징계 처분을 받은 법관은 11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외부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에 윤리감사실이 먼저 진상을 파악해 징계 요청을 한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 20일 구속된 최민호(43) 수원지법 판사의 금품수수 사건을 대하는 대법원 대응 방식에서도 이런 감찰시스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관련 의혹은 지난해 4월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불거졌다. 최 판사가 ‘명동 사채왕’이라 불리는 최모(61·수감 중)씨와 수년간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6억원 이상의 부적절한 금전거래를 했으며, 관련 첩보가 2013년 하반기에 이미 수사기관에 입수됐다는 사실을 대법원은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윤리감사실은 자체 조사에 착수해 최 판사로부터 3차례 경위서와 2차례 금융계좌 거래 내역을 제출받았다.

그러나 최 판사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데다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비리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재판 배제 등의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 판사는 긴급체포 되기 직전까지 9개월 간 담당 사건을 재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제도적 한계 때문에 검찰 수사 진행 경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사전’ 감찰 활동이나 ‘사후’ 조사를 통해 조치하는 역할 모두 실패한 것이다.

국민일보가 21일 관보에 게재된 법관 징계 처분 공고를 확인한 결과 200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모두 11명의 판사가 감봉·정직 등 징계를 받았다. ‘벤츠 여검사’ 사건에 연루돼 2012년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부산지법 윤모 부장판사 사례를 비롯해 대부분 언론에서 의혹 제기가 됐거나 수사기관이 법원에 비위사실을 통보한 이후에서야 나온 조치들이었다.

윤리감사실의 감찰 활동이 징계로 이어지는 경우 자체가 적다는 점도 문제다. 윤리감사실이 조사에 들어가면 해당 법관이 바로 사표를 제출하는 관행 때문이다. 퇴직하면 징계나 비위 사실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윤리감사실은 대법원 내에서도 ‘크렘린궁’이라 불릴 정도로 정보가 철저하게 차단돼 있다.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멀쩡하게 재판하던 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보면 그 중 일부는 윤리감사실 조사가 들어와 사표를 낸 경우”라고 전했다.

대법원은 “검찰의 감찰본부와 달리 윤리감사실에는 강제조사 권한이 없어 감찰에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대법원은 최 판사가 구속된 당일 긴급회의를 열고 윤리감사 기능 강화 등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법관이 맡고 있는 윤리감사관을 외부 인사에 개방하고, 판사에 대한 징계 수위가 최고 정직 1년에 불과한 법관징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