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 이후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이번엔 프랑스 현직 여성 장관을 풍자한 외설 벽화가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또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의사들은 바보가 아니다’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계정에 기괴한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프랑스 중부 클레르몽 페랑에 위치한 대학병원의 인턴 휴게실 벽면을 찍은 것으로, 벽에는 미국 만화 캐릭터인 슈퍼맨과 슈퍼우먼, 배트맨, 플래시 등이 원더우먼을 집단 성폭행하는 벽화(사진 속 모자이크 된 부분)가 그려졌다.
이 사진이 주말 동안 인터넷에 급속히 유포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특히 벽화 곁에 “이런, 의료법이라니!” “넌 좀 더 배울 필요가 있어!” 등의 문구가 적혀 있어 마리솔 투렌 보건사회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투렌 장관은 진료비 지불 방식 변경, 약사의 예방접종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 의사들의 불만을 산 바 있다.
한 여성단체는 사진이 게시된 다음날 성명을 내고 “사진을 삭제하고 벽화를 지우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미래에 의사가 될 사람들이 장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자 성폭행 장면을 이용했다”며 “성폭행은 여성에 대한 가학행위다. 이는 ‘인간 생명을 존중하라’는 프랑스 의사 윤리규정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투렌 장관 또한 “성폭행을 부추기는 충격적인 그림이다. 의사들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비난 여론에 직면하자 해당 페이스북 운영자는 지난 19일 사진을 삭제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로랑스 로시뇰 가족정책 담당 비서관은 “초인 행세를 하는 자격 미달의 의사들은 즉각 사과해야 한다”고, 파스칼 보아타르 여성인권 담당 비서관은 “의료법에 대한 성적 모독은 용납될 수 없다”고 자신들의 트위터에 썼다.
프랑스 의사협회 또한 비난 성명을 내는 한편, 의협 대표가 직접 병원장을 만나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했다.
결국 병원 측은 “여성을 모독하고 의료 윤리를 저버린 행동이었다”고 사과하며 벽화를 지우고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젊은 의사들은 여전히 불만이 남은 모양이다. 이들은 벽화가 사라진 흰 벽에 ‘나는 샤를리다’를 비꼰 ‘나는 벽화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내걸고는 “보다 덜 외설적인 방식으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성폭행 벽화, 자유 아닌 범죄”
입력 2015-01-22 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