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월급쟁이 더 터는 한국

입력 2015-01-22 02:11
‘증세 없는 복지’를 복지 키워드로 꺼내들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조세·복지 정책이 ‘연말정산, 13월의 세금폭탄’ 논란 속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매년 증세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증세는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누리과정·무상급식 등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갈등에서부터 올해 초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문제까지 세금 논란이 잇따라 불거진 상태다. 때문에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증세’ 필요성을 인정하고 국민적 이해와 협조를 구한 뒤 조세·복지 정책을 이에 맞춰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증세 없는 복지’는 2012년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경제 활성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증세 없이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약속했다. 법인세 인상 대신 비과세·감면 대상 축소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대선 공약은 정부 출범 3년차에 부메랑이 돼서 국민들에게만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당초부터 ‘세금을 올리지 않고 무상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은 세수 확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세목·세율 조정이 없는 만큼 증세는 아니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와 정부의 이런 입장 때문에 불필요한 논란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따른 올해 세수 증대 예상 금액은 5조원 이상이다. 지난해 국회 처리가 무산됐던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도 재추진 중이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개정 세법에 따른 세수증대 효과도 9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사실상의 증세지만 이를 ‘증세’로 부르지 못하는 게 정부의 현실이다. 문제는 또 있다. 새해 예산안에선 복지 예산이 또 늘어나 전체 30%선을 차지한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누리과정(3∼5세 대상 보육지원 사업)과 기초연금 등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재원을 분담하는 복지 예산도 증액 편성됐다. 거기다 향후 재원 부족이 생기면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을 일으킬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유권자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증세 대신 ‘무상복지’ ‘복지 확대’ 같은 장밋빛 공약에만 집착하고 있다. 민심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부는 21일 연말정산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부랴부랴 보완책을 내놓고 공제분 소급 적용 검토 카드까지 꺼내드는 황당한 사태를 맞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에게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전제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 동의를 구하고 그 토대 위에서 조세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