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결 의젓해 보였다. 더 이상 ‘해품달’의 어린 왕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첫 성인 역할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어제 시사회를 보면서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는지 몰라요. 영화 초반 중심을 못 잡고 다소 헷갈려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좀 더 제대로 준비하고 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는 영화에서 정신병원 환자 수명 역을 맡았다. 어릴 적 겪은 치명적인 경험 때문에 자신의 세계에 꽁꽁 갇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청년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머리와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지어보이는 겁먹은 표정 등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나리오를 받고선 정유정 작가의 원작소설을 읽고 감동받아 주인공에 선뜻 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수명의 캐릭터가 공감이 안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고심했다고. “원작에 빠지다보니 소설 속 캐릭터가 계속 신경 쓰이고 잘 표현하고 있는지 걱정도 됐어요. 수명은 여리고 여자 같은데 저는 사실 반대거든요. 잘 놀고 잘 먹고 친구들과 얘기도 잘하고. 그런데도 수명에게 왠지 끌렸어요. 그래서 내가 만든 수명을 보여주자 마음먹었죠.”
영화는 정신병동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환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더러 나온다. 그런 가운데 수명은 전기치료에 시달리고 흰눈동자를 드러내며 기절하기도 한다. 달콤한 로맨스가 있는 배역을 주로 맡아온 그이기에 힘들었을 법도 하다. “육체적인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실감 나는 캐릭터를 위해 옷도 좀 크게 입고 신경을 많이 썼죠. 선배들이 많이 도와주셨고요.”
정신병원에서 학대받던 수명과 승민(이민기)이 탈출을 시도해 쾌속 보트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암울하고 갑갑했던 영화에 청량감을 선사한다.
여진구는 “물살을 가르며 시원하게 내달리면서 가슴 속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며 “고교생이든 어른이든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는 힐링 무비”라고 소개했다.
“이제 고3인데 공부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진학 학과는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좋아지기 위해 바닥을 치고 나서 다시 점프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친구들은 연애도 하고 그러는데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꿈꾸는 연애 스타일은 놀이공원 가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할 것 같다”며 웃었다. 예의바른 그의 태도에서 반듯한 청년의 이미지가 엿보였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