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특히 중국의 역사에서 환관이 미치는 역할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이 남성 실격자들을 다룬 책과 논문은 의외로 적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이 환관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말하기 곤란한 ‘추접스러움’이 하나의 원인은 아닐까?”
저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다. ‘내시’라고도 부르는 환관은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빠지는 법이 없지만 환관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환관 이야기’는 일본인 역사학자가 쓴 중국의 환관에 대한 연구서로 4000년 동안 전제군주제와 표리를 이루며 살아오다가 청나라 말기인 1924년에 멸종한 기이한 존재를 조명한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환관은 중국만의 특수한 제도가 아니었다. 동양만의 문화였던 것도 아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투르크에서 동쪽으로는 조선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에서 아시아의 전 지역에 걸쳐 존재했으며 한반도에서는 조선조 말기까지 중국처럼 쭉 이어져 왔다. 세계의 문명국 중에서 환관이 존재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뿐이다.”
환관은 서양에서는 기원전 8세기, 중국에서는 기원전 14세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관은 전제군주제와 함께 태어나서 같이 종말을 맞는데, 군주는 두 가지 이유에서 환관의 존재가 필요했다. 하나는 환관이 신체의 기형으로 인해 모든 인간관계에서 배제된 무연자, 무적자라는 점에서 군주의 비밀을 보호하기에 적합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의 대리자라는 군주의 ‘반인반신(神)’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역시 ‘반인반축(畜)’ 성격의 환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환관과 군주는 비밀과 비인간성을 공유하는 관계였다.
환관은 군주, 왕비, 관료, 종친 등과 함께 궁정의 주요 세력을 이뤘다. 환관은 이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론 반목하며 동거해 왔다. 한·당·명나라의 환관사를 다루는 이 책은 한에서는 외척이, 당에서는 왕비가, 명에서는 관료가 환관의 파트너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 역사가들은 한·당·명·청 같은 제국들이 멸망한 원인을 환관에서 찾기도 한다. 환관은 자신들만의 비선 조직과 궁중 정보를 활용해 권력에 개입했고, 이익을 취했으며, 세력을 키웠다. 명 말기에 환관 숫자는 10만 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송나라는 환관이 하는 짓에 넌더리를 내 50명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청 말기 마지막 환관의 수는 478명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책은 기묘한 이야기로서 눈길을 끌지만 부제로 쓰인 ‘측근정치의 구조’라는 측면에서 현대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현대의 환관적 존재’를 논하며 개인들이 ‘조직 속의 인간’이 됨으로써 환관화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우려한다. 또 권력자에 밀착해 정보를 쥐고 활개를 치는 비서그룹을 현대의 환관으로 규정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4000년 환관 역사… 그리고 현대의 문고리 권력
입력 2015-01-23 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