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부가 연말정산과 관련,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은 2013년에 이미 숱한 논란을 겪으며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는 쪽으로 법을 고쳤다. 사실 그때부터 봉급생활자들은 올 2월 월급명세서에 찍힐 세금 환급분이 줄어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금계산서를 돌려본 직장인들은 ‘증세’가 현실화되고 그것도 정부가 얘기한 액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떼이는 것으로 나타나자 분개하는 것이다. 정부는 억울할 수도 있다. 예견된 것인데 공연히 언론들이 들춰내 여론을 악화시켰다고.
박정희정부는 1977년 7월부터 부가가치세 제도를 시행했다. 당시 이 새로운 세제를 도입하는데 6년간의 검토가 필요했다. 1976년 11월 국회는 다른 법안들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이 법안만큼은 여야 표결에 부치는 신중함까지 보였다. 하지만 민심이 뒤늦게 들끓기 시작했다. 부가세를 12%나 물리자 상인들은 이를 물건값에 반영해 물가가 앙등하니 표심이 악화돼 1978년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신민당에 사실상 패했다. 이듬해 10월에는 상인들이 부마항쟁에까지 가세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솔직하지 못한 자세가 분노 키워
건국 이래 최대 증세로 꼽히는 부가가치세 사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부가 국민에게 증세를 설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오죽하면 세금을 혈세(血稅)라고 부를까. 올해로 제정 800주년을 맞는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도 혈세를 너무 많이 올린데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소비세 2차 증세 시행을 연기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연말정산과 관련해 국민의 분노를 사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국민들은 느끼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 증세는 아니고, 불합리한 공제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고소득 직장인으로부터 더 거둔 세금을 저소득 직장인에게 분배하기 위함이라고 그럴듯하게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해 담뱃세 2000원 인상에서 경험했듯이 정부가 너무 징세편의주의에만 매몰돼 있는 것 같다.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정부가 봉급생활자라는 카테고리 내에서만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이등분함으로써 공평과세의 핀트를 잘못 맞춰 발생한 것은 아닐까. 매년 세수가 펑크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월급에서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는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부터 건드리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발상이다. 더구나 월급쟁이 카테고리에서의 소득 분배가 언뜻 보면 잃는 사람이 있으면 얻는 사람이 나오는 ‘제로섬 게임’인 듯도 보이지만 이번 연말정산 사태는 저소득층의 세 부담도 늘어나는 상황까지 나타나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신뢰는 공평한 과세에서 나온다
증세의 타깃을 고소득 봉급생활자뿐 아니라 전문직 자영업자와 고액 자산가로 했다면 대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법인세율을 인상불가 영역으로 정해놓고 철옹성을 쌓아놓다 보니 만만한 샐러리맨들만 타깃이 됐다. 이는 지난해 11월까지 국세수입을 보면 짐작이 간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조8000억원, 2000억원 늘었는데 법인세는 1조5000억원 줄었다. 정부는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투자가 위축된다는 도식적인 논리를 펴지만 경기가 법인세에만 좌우된다는 것은 기만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가계소득 증대 대책의 일환으로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짜내기 위해 3대 패키지 세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연초부터 연말정산 대란으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의 정책예측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21일 다자녀 공제, 노인연금 공제 등 일부 보완책을 내놨지만 절실한 건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신뢰는 공평한 과세에서 나온다. 그래야 정부가 쑨 메주 성분이 팥이 아닌 콩이라고 국민은 믿을 것이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시각-이동훈]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입력 2015-01-22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