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 불감증’은 변화될 조짐이 없다. 전범국가임을 망각한 채 오히려 자신들이 미국의 원자폭탄에 피격됐다며 ‘피해자 구도’를 연출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똑같은 전범국이지만 독일은 전혀 다르다.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사과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까지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과거사를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일본은 잊고 묻으려만 한다.
◇정반대의 독일과 일본의 ‘참배 정치’=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홀로코스트(대학살) 추모관을 찾아 참배한 것은 일본의 허위의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아베 총리는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 배울 수 있었다”며 히브리어와 일본어로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그는 정작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희생된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국민들에게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독일은 달랐다. 통일 전 서독 시절인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2차 세계대전 유대인희생자 위령탑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세계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라고 평가했다. 2009년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발발 70주년 기념식에서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독일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 발언으로 ‘독일과 나치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며 “반면 일본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산다”고 지적했다.
◇망각하고 왜곡하는 일본=일본은 명백한 홀로코스트 가해자다. 30만명의 중국인을 살해한 난징대학살이 대표적이다. 1937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차별 사격, 생매장, 참수, 집단화형, 십자가형 등 극악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수만의 여성을 강간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홀로코스트로 기록된 이 전쟁범죄를 일본은 부정하기에 급급하다.
우리나라도 이런 일본의 학살 피해국이다. 1919년 3·1운동 직후 수원 만세운동 중심지였던 제암리에서 기독교도를 학살한 제암리 사건, 청산리전투 패전 이후 간도의 독립군을 소탕한다며 조선인 수만명을 학살·강간한 간도참변 등이 대표적이다. 1932년 일본 간토(關東·관동)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우리 동포 7000명을 살해한 ‘관동대학살’도 있다.
1932년 만주 하얼빈 근교에 세워진 ‘731부대’는 정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포로로 잡힌 한국·중국·러시아인을 ‘마루타(통나무)’삼아 각종 세균·독가스 실험을 행했다. 하지만 부대 정보를 미국에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은폐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발효한 ‘특정비밀보호법’에 따라 부대 관련 사료가 비밀로 지정되면 진실이 영원히 묻히게 된다.
일본은 성노예나 마찬가지인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의 배상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참여’라고 왜곡하고 있다. ‘피해자 사망에 의한 자연처리’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반(反)인륜 범죄 가해 사실을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다.
◇기억하고 배상하는 독일=독일은 끊임없는 사죄와 피해배상, 심지어 영토 반환과 공통 역사교과서 편찬을 통해 주변국과 화해하고 있다. 전쟁 피해배상 협정이라는 국제법에 의거해 나치 범죄에 대한 자발적인 배상조치를 실시했다. 1952년 서독은 ‘이스라엘 조약’을 체결해 이스라엘 정부에 30억 마르크, 유대인회의에 4억5000만 마르크를 배상했다. 1959∼1964년엔 서유럽 12개국과 ‘나치피해보상 포괄협정’을 체결해 총 10억 마르크도 배상했다. 1961∼1972년 생체의학실험 희생자 보상을 위해 유고, 폴란드 등에 1억2000만 마르크를 지급했다. 1991년 나치 희생자 및 강제노역자 300만명에게 5억 마르크, 1993년 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에 10억 마르크를 각각 지급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나치의 반인륜 범죄가 단죄된 반면 일본 도쿄 전범재판에선 식민지배 과거사, 세균전, 군 위안부 등 반인륜 범죄는 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한·일 국교정상화 50년] 獨 반성, 또 반성 vs 日 외면, 또 외면
입력 2015-01-22 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