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과 동대문 등의 우체통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우체통에 시뻘건 양념이 말라붙어 있는가 하면 우체통 투입구 주위에 담뱃재가 붙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체통을 열면 더욱 가관이다. 담배꽁초와 귤껍질, 나무꼬치는 물론 닭꼬치·떡볶이 양념이 검게 엉겨붙어 있는가 하면 내부의 우편 자루에 담배꽁초가 만든 구멍들이 발견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테러’를 당한 우편물을 받아보는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빨간 우체통이 쓰레기통인 줄 알고 그 안에 온갖 쓰레기를 던져 넣어 빚어진 일이다. 최근 요우커(游客·중국인 관광객)들이 국내 관광에 밀려오면서 일어나는 씁쓸한 단면이다. 일부 우체통에는 보다 못한 주변 상인들이 ‘這不是一個拉扱桶(이것은 쓰레기통이 아닙니다)’라는 쪽지를 붙일 정도다.
관광지마다 무자격 관광 가이드가 판을 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럽다. 최근 경복궁 관광에 나선 요우커에게 엉터리 중국어 관광 가이드가 “세종대왕이 궁궐 창문을 보고 만든 ‘창문 글자’가 한글”이라고 해설하는 내용의 보도는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인체의 발성기관을 본떠 창제된 사실을 모르는 요우커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우리 관광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밖에 보기에 낯 뜨거운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 가운데 최대 다수를 차지한 지는 오래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524만5693명으로, 단일 국가 최초로 500만명을 돌파했다. 중국 영토인 홍콩·마카오(6553만명)를 제외하면 개별 국가로는 사실상 한국이 1위다. 10월 초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을 이용해 한국에 온 요우커가 크게 증가한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들은 ‘큰손’답게 왕성한 씀씀이를 자랑한다. 지난해 10월 국경절에만 약 3억7000만 달러(약 396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지난 한 해 전체를 보면 600만명 이상이 한국을 찾아 14조원 넘게 쓴 것으로 추정된다. 24조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30만개가 넘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큰 몫을 하고 있는 만큼 중국인을 상대로 한 관광산업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는 분명 반길 일이다. 하지만 국내 관광산업 관계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명소 몇 군데만 둘러본 뒤 쇼핑 위주로 짜이는 ‘천편일률’적인 일정, 불편한 의사소통, 복잡한 세금 환급 절차 등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인들의 차별적인 대우는 중국인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국 관광시장에 대한 요우커들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경쟁국들은 요우커 모시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아직도 오는 손님 맞기에 급급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지금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요우커마저도 언제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릴지 모른다.
우체통을 쓰레기통으로 만든 요우커나 ‘한글은 창문 글자’라고 설명하는 엉터리 가이드 등만 탓할 수 없다. 한 번 찾아온 요우커가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정책·시스템 등 관광 서비스 증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가만히 있어도 찾아올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제라도 차분히 제대로 된 인프라 구축에 매진해야 한다. 관광산업이 황금알을 낳게 할 수 있을지, ‘요우커 600만명 시대’를 뛰어넘는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지는 준비하기 나름이다.
남호철 관광선임기자 hcnam@kmib.co.kr
[내일을 열며-남호철] 요우커 증가의 명암
입력 2015-01-22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