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 deep] 연말정산, 선진국엔 없는 제도… 공제항목 복잡해져 혼란 가중

입력 2015-01-21 04:02 수정 2015-01-21 09:22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연말정산 시즌은 늘 시끌했다. 정부가 전년도에 발표한 세법 개정안에 따라 돌려받을 세금(환급액)이 달라지니, 이를 계산하는 시기가 되면 개개인의 관심과 불만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은 ‘시끌’한 수준을 넘어섰다. 여야 정치권이 모두 나서 따지고,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께 송구함’을 표현했을 정도다. 그만큼 납세자의 ‘득’이 줄고, ‘실’이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공제율이나 공제 대상 정도를 조정했다면 올해는 아예 세금을 매기는 방식을 바꿨기(세액공제 전환) 때문에 변화의 폭이 크고 넓다. 그동안 과도한 공제 등으로 인해 납세 형평과 분배가 이뤄지지 않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정부 설명에도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식 연말정산, ‘13월 월급’된 사연=한국의 연말정산은 ‘월급쟁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독특한 제도다. 일단 매월 봉급의 일정액을 세금으로 낸 뒤 이듬해 초 회사를 통해 정산신청을 해서 세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이때 소득공제는 자영업자가 세금 신고를 할 때 사업에 들어간 제반 비용을 계산해 세금을 감면받는 것처럼 봉급생활자가 경제활동, 즉 확대재생산을 위해 들어간 돈을 돌려받는 월급쟁이용 ‘비용 공제’인 셈이다. 이 방식은 정부 입장에서는 매월 개인이 쓰는 비용 등에 따라 소득이 마이너스인 경우에도 안정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또 납세자 입장에서는 번거롭게 자진 신고할 필요가 없는 데다 보너스를 받는 것 같은 기쁨으로 이어졌다. 내가 미리 낸 세금을 정산하는 것임에도 새해 초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13월의 월급’처럼 불리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소득공제 항목이 정부 정책에 따라, 선거 등 정치적 이유로 인해 추가되고 변경되면서 지나치게 확대되고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세원 투명성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신용카드 사용액을 소득에서 일부 공제해주고,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며 전통시장에서 쓴 소비를 추가 공제해준 것 등이 대표적이다. 출산 장려책에 따라 자녀수에 따른 공제 등도 등장했다. 그런데 한번 늘어난 공제 항목을 다시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근로소득자들이 실제로 내는 세율(실효세율)은 소득세법상 명목세율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소득 수준에 따라 6∼38% 달하는 명목세율과 달리 근로소득세의 평균 실효세율은 총급여 대비 4.2% 정도에 그친다. 직장인들이 월급에서 일단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지만, 추후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받게 되면 소득 100만원에 4만2000원꼴로 세금을 낸다는 얘기다.

게다가 소득 공제는 돈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 혜택이 커진다. 애초 소득에서 공제항목의 비용만큼 뺀 뒤 세율을 매기기 때문에 세율이 높은 고소득자가 사실상 더 많이 ‘할인 받는’ 역진성이 생기는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소득 공제로 인한 1인당 세금 감면액은 1000만원 이하 급여소득자의 경우 56만여원에 불과하지만, 10억원 초과자는 3815만여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획재정부가 세액공제 방식으로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받아 이 재원을 저소득층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재개편’ 검토하는 정부, “투박한 접근 탓 혼란 확대”=그러나 납세자들의 강한 반발에 기재부도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자녀수가 많은 가정에 돌아가는 혜택이 적고 노후 대비에 대해 세액공제가 부족하다는 지적 등을 올해 세제개편 과정에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중 간이세액표 개정을 통해 개인별 특성 등이 보다 정교하게 반영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공제 축소에 따른 불만을 반영해 내년에 적용될 세법을 다시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2013년 세제개편 당시 폐지된 출생공제나 6세 이하 자녀 공제 등을 재도입하는 방안과 연금저축·퇴직연금 등의 세액공제율을 12%로 상향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들 대책은 모두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세액 공제를 추진하면서 국민 저항감 등을 고려해 섬세하게 접근하지 못한 탓에 세법을 또 손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세수가 펑크 날 것으로 예상돼 근로소득자 세금 감면 제도를 검토한다고 나서니 국민 저항이 커지는 것”이라면서 “중대한 세법 개정을 하면서 행정부가 급하게 잘못된 세수추계를 했고, 국회가 이를 충분히 심의하지 못한 탓에 혼란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의료비나 교육비 등 삶의 필수 비용은 공제 툴에 더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액공제 전환을 하면서) 공제 내역에 너무 공통적인 사항만 정하면서 예측치가 벗어나게 됐다. 의료비나 교육비 등의 차이를 반영할 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세종=이용상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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