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자유학기제 사교육’까지 등장… 선행학습 부추긴다

입력 2015-01-21 03:52 수정 2015-01-21 09:31

마침내 ‘자유학기제 맞춤형 사교육’까지 등장했다. 자유학기제는 중학생이 한 학기 동안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진로탐색 등을 하는 정책으로 박근혜정부의 교육 분야 핵심 국정과제다. 학원들은 자유학기 동안에 학력이 저하되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식으로 ‘불안 마케팅’을 일삼고 있다.

20일 학원들이 밀집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건물. ‘자유학기제 운영학교 학생들을 위한 3주 집중학습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이 게시물이 내건 핵심 문구는 ‘진로활동은 학교에서, 내신 집중력은 학원에서’다. 영어 문법·독해·어휘를 3주에 걸쳐 교육하고 시험을 보기 때문에 학생들이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인근 학원들도 비슷했다. 자유학기 기간에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자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해당 학년의 과정을 선행학습으로 마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원 강사 A씨는 “시험 없이 어영부영 중학교 1학년을 넘긴 아이가 2학년부터 시작할 ‘내신 폭풍’을 감당하는 건 무리”라며 “부족한 시험 훈련을 가상으로라도 길러 시험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풀어주면 절대 공부 안 해요. (내년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면 점수 떨어질 확률이 90%입니다. 이번 방학에 각자 대비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시험이 사라질 걸 대비해 학원 자체적인 시험 횟수를 늘렸다. 통지표를 바로 집으로 보내 학생이 자신의 학습 수준을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학원 근처 카페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기다리던 김모(44·여)씨는 “집중력이 좀 떨어지는 아이라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한다”며 “같은 반 엄마들이 (자유학기제 코스에 등록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 박모(40·여)씨도 “중학교 3년 내내 시험을 안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유학기 동안에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학원에 보내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안심된다”고 말했다.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광고도 여전했다. 학원들의 선행학습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선행학습 금지법이 지난해 시행됐지만 제대로 단속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수학전문학원 출입문에는 ‘초등 7학년? 중등 4학년? 예비학년의 시즌이 다가왔다’는 광고문구가 나붙었다. 중1과 고1은 교과과정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에 최소한 1년의 선행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근 영어전문 학원은 아예 반을 ‘선행A반’ ‘선행B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예비 고1 선행반은 이미 이달 둘째주부터 가정법과 준동사, 분사 구문 등을 배우고 있었다. 이 학원 관계자는 “방학 때 선행학습 안 하면 뒤처지고, 뒤처지다 보면 좋은 대학을 못 가고,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선행학습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에 수천개 학원이 있지만 단속업무를 맡은 인원은 고작 20여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