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순방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야드 바셈 기념관을 방문, 피해자를 추모하고 경의를 표했다. 야드 바셈 기념관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 600만명을 추모하기 위해 1억250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관련 자료와 영상 등을 보관한 이스라엘 국립 추도시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 일본 총리로는 9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은 아베 총리는 연설에서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 배울 수 있었다”며 “대학살이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겪은 고난을 전 인류의 유산으로 남기려는 여러분의 노력에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품고 있다”며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에게 존경을 표시했다.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전범국으로서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결의를 다진 아베 총리의 모습이 보기 좋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강조하고 결의를 다진 건 나치 관련뿐이다. 그는 나치의 잔혹함을 강조하면서도 일제의 만행엔 침묵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난징 대학살 등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일제의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이중적 역사관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는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 앞에 무릎 꿇기 전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먼저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세계인들도 아베의 야드 바셈 기념관 참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겪은 고난을 유산으로 남기려는 것에는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가 아픈 과거를 잊지 않으려고 세운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철거를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로는 정상적인 한·일 관계 복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주 초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6차 한·일 국장급 회의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수교 50주년인 올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이 문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이 역사 앞에 겸허하게 서면 길이 열린다.
[사설] 아베 총리의 유대인 희생자 추모가 멋쩍은 까닭
입력 2015-01-21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