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공황 시절. 한 청년이 학업을 마치고 산속 오두막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가 한 일은 독서였다. 그는 서랍장 안에 넣어 둔 지폐 1달러가 남아 있는 한 아직 빈털터리가 아니라고 믿으며 불안을 잠재웠다.
그는 조이스, 토마스 만, 슈펭글러를 읽었고, 슈펭글러가 언급한 니체를 읽었고,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쇼펜하우어를 읽었다. 쇼펜하우어에서 칸트로, 칸트에서 다시 괴테로 거슬러 올라갔다.
훗날 그는 작은 오두막에서 오로지 책을 붙들고 지냈던 5년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지탱하게 해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다.
그를 흉내 낸 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어렵게 떠난 배낭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지갑에 아르헨티나 지폐 2페소가 남았다. 환전하면 1달러가 안 되는 그 돈을 간직했다. 프리랜서일 때 연재를 끝내거나 직장인일 때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면 이렇게 생각했다. 이곳 반대편 멀고 먼 나라에서 가져 온 2페소를 언젠가 쓸 날이 오겠지.
책도 그랬다. 차곡차곡 쌓아둔 책을 언젠가 읽어야지, 그것만큼은 해낼 거야 하고는 실업 혹은 무기력에 빠졌던 나날을 견뎠던 적이 있었다.
1년에 두 번 책을 선별해 한 후배에게 보내기도 했다. 후배는 다 읽고 비닐커버로 포장한 후 짧은 독후감과 함께 책을 돌려줬다. 독서가 뜸해지려 할 때마다 후배에게 다음엔 무슨 책을 빌려줄까 하는 생각이 나를 다시 책에 가까이 가게 했다.
캠벨은 5년간 책을 읽고 30여년간 자신이 해야 마땅한 일-그는 자신의 책에서 그것을 소명이라 했다-을 위해 살았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불안한 세상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하지만 2페소가 여전히 내 지갑 안에 있고 책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면 나는 아직 빈털터리가 아니며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닐까.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다음엔 무슨 책 빌려줄까
입력 2015-01-2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