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맏딸인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다.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형량을 판단하는 데 필요하다며 직권으로 ‘조양호 증인’을 채택했다. 변호인 신청이 없는데도 재판부가 직접 ‘양형 증인’을 채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땅콩 회항’ 사태로 구속 기소된 조 전 부사장의 첫 공판은 19일 오후 2시30분 서울서부지법에서 형사12부(부장판사 오성우) 심리로 열렸다. 재판부는 “조현아 피고인은 언제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창진 사무장은 과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가 재판부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조 회장을 양형 관련 증인으로 소환해 이 부분을 직권 신문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박 사무장이 계속 대한항공에서 근무할 수 있을지 조 회장에게 직접 들어보겠다는 취지다. 박 사무장의 향후 거취가 그만큼 조 전 부사장의 양형에 중요한 요소임을 내비친 것이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이번 사건이 ‘갑을 논란’까지 번진 상황을 고려할 때 재판부가 ‘을’인 박 사무장에 대한 보호 여부를 중요하게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형 증인은 재판부가 선고 전 피고인에게 소명 기회를 주기 위해 부르는 증인을 말한다. 통상 피고인의 양형에 유리한 진술을 하게 된다. 법원 소환장을 받고도 증인 출석에 불응하면 과태료를 부과 받거나 구인될 수도 있다.
조 회장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조 전 부사장의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할 상황이다. 더구나 이 재판에는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다. 한진그룹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30분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
이날 공판에선 5시간여 동안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졌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검찰의 공소 사실이 기억과 다소 다르거나 실제보다 과장됐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에메랄드색 수의를 입고 등장한 조 전 부사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검찰이 “어따 대고 말대꾸야, 내가 세우라잖아”라며 박 사무장에게 소리친 공소 사실을 낭독하자 손수건 같은 것을 꺼내 얼굴을 닦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할 말 있으면 해도 된다’는 재판부의 말에 “없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한 것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 측 변호인은 쟁점이 됐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과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항공보안법 관계 법령이 모두 ‘하늘의 길’만 항로에 포함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검찰 주장은 확장해석과 유추해석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장이 박 사무장으로부터 ‘승무원 한 명이 하기(비행기에서 내리는 것)해야 한다’는 말만 듣고 ‘램프 리턴’했고 자초지종은 이후에 들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위력으로 항공기를 되돌렸다고 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조 전 부사장이 당시 승무원 김씨를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박 사무장의 손등을 갤리 인포(객실 매뉴얼 책자)로 내리찍었다는 부분은 부인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여모(57) 상무와 국토교통부 김모(54) 감독관의 변호인도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전수민 나성원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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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1심 첫 공판] 재판부, 조양호 회장 증인채택
입력 2015-01-20 04:13 수정 2015-01-20 0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