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거물급 사채업자로부터 대가성 있는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헌법상 신분이 보장되는 판사가 체포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법원은 충격에 빠졌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일명 ‘명동 사채왕’ 최모(61·수감 중)씨로부터 사건 알선 청탁과 함께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18일 수도권 지방법원 소속 최모(43) 판사를 긴급체포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20일 최 판사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일부 관련자가 친인척이라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가 이뤄지면 진술 번복 권유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최 판사가)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인 점 등을 감안해 18일 오후 3시10분쯤 최 판사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7, 18일 이틀 연속으로 최 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법원에 정식 체포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것은 현직 판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최씨가 2008년 부천지청에서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가까운 친척을 통해 당시 검사 신분이었던 최 판사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의 친척과 최 판사는 동향 출신이다.
검찰은 최 판사가 법관으로 전직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부터 수개월간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최씨가 연수원 근처로 최 판사를 찾아가 “사건 담당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해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 판사가 2009년 이후 수년간 최씨로부터 전세자금, 주식투자 등의 명목으로 서너 차례 1억원짜리 수표 여러 장과 현금 등 6억원 이상을 제공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일부 금품의 대가성이 인정된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해 초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광범위한 계좌추적과 관련자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최 판사는 당초 대법원에 자신의 계좌 자료까지 제출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그동안 “최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동향 출신 재력가 A씨에게 전세자금 3억원을 빌렸다가 갚은 적은 있지만 최씨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검찰은 사채왕 주변 계좌추적을 통해 A씨가 빌려줬다는 3억원이 최씨로부터 나온 정황을 찾아냈다고 한다. 최씨가 제3자를 통해 최 판사에게 뇌물을 전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검찰은 17일 이번 사건을 제보한 최씨의 전 내연녀 H씨를 불러 최 판사와 대질심문도 벌였다.
검찰은 이와 함께 최씨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 챙긴 검찰 수사관 3명에 대해서도 조만간 처벌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최씨는 사기도박단의 뒤를 봐주는 전주 노릇을 하면서 변호사법 위반, 마약 등 혐의로 2012년 4월 구속돼 2년9개월째 수사와 재판을 되풀이해 받고 있다.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檢 ‘사채업자 금품수수’ 현직 판사 긴급체포
입력 2015-01-20 0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