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재호] ‘참고해선 안 될 언론’이라니

입력 2015-01-20 02:48

한류스타인 영화배우 장근석(28)이 결국 탈세 스캔들로 촬영을 마친 TV 예능 프로마저 하차했다. 첫 보도 직후 탈세로 100억원 이상 추징금을 국세청에 납부한 사실을 부인하다가 뒤늦게 시인하면서 인기 절정의 tvN 예능 프로 ‘삼시세끼’ 어촌편 방영을 코앞에 두고 물러났다. 국민일보가 지난 14일 첫 단독 보도한 지 사흘 만이다.

국민일보는 장근석의 탈세 스캔들과 관련해 사흘 내리 5건의 지면용 기사와 2건의 온라인용 기사를 내보냈다. 7건 중에 3건은 장근석 탈세 관련 단독기사였고 1건은 환치기 수법을 통한 기획사와 연예인의 탈세 실태를 파헤친 심층 기사(사건인사이드)였다. 여기에 장근석은 물론 세무 당국의 책임을 추궁한 ‘사설(社說)’을 보탰다. 또 여론의 반응과 방송 하차 등 2건을 온라인에서 추가로 전송했다.

네이버 검색창에서 ‘장근석’을 키워드로 같은 기간 동안 검색해봤다. 총 1650여건. ‘장근석 & 삼시세끼 하차’가 860여건, ‘장근석 & 100억원 탈세’가 나머지로 나뉘었다. 네이버와 제휴한 400여개 매체가 평균 4건꼴로 장근석 관련 기사를 내보낸 셈이다. 이 정도로는 ‘심각한’ 어뷰징(동일 또는 유사 제목·기사 반복 전송)이라고 시비를 걸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종신문보다 7∼10배 ‘융단폭격’

그래서 이번엔 장근석과 1등을 자처하는 신문의 ‘○○닷컴’을 키워드로 한정해 검색했다. 그러자 ○○일보 52건, 자매지인 스포츠○○ 73건이 각각 검색됐다. 특종 보도한 국민일보에 비해 ○○일보는 7배, 스포츠○○은 10배가 넘는 기사들을 쏟아낸 것이다. 한눈에 봐도 취재 품 안 들이고 제목과 내용만 약간 달리 쓴 어뷰징이 대부분이었다.

최수진(국민대)·김정섭(성신여대) 교수는 언론사들의 어뷰징 실태를 분석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최근 보고서에서 “(어뷰징 편중 정도가) 주요 일간지나 방송사라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 소식을 접한 네이버 관계자는 “제휴 언론사 중 어뷰징하는 곳은 약 10%, 40개 정도”라며 “그것도 메이저 일간지와 경제지들이 대부분 주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스포츠나 연예 전문 사이트들이 어뷰징을 남발할 것이란 언론계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조사와 증언이다.

매뉴얼 따라 작동하는 어뷰징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보의 어뷰징이 내부 매뉴얼에 따라 조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장근석 탈세 보도 이틀 전인 지난 12일, 미디어오늘은 ○○닷컴의 ‘검색 아르바이트 (어뷰징) 매뉴얼’을 입수해 온라인 사이트에 폭로했다. 매뉴얼에 나타난 어뷰징 ‘대응원칙’과 ‘유의사항’을 보면 대한민국 1등을 자처하는 언론사의 ‘닷컴스럽다’는 비아냥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포털의) 실시간 검색 기사 대응은 “‘클릭을 유발하는 제목+눈길 끄는 사진+간단명료한 내용’의 기사를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 자주, 많이 내는 것”이다.

특히 매뉴얼은 “타사의 경우 방송사 기사(MBN, 한경TV 등)나 스포츠연예 매체, 동아, 중앙, 매경 검색 기사를 참고할 것”이라면서 “연합뉴스와 한국, 국민(쿠키뉴스 포함) 등 일간지 기사는 참고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연합은 뉴스 계약을 맺지 않은 관계로, 국민과 한국은 클린 저널리즘을 지향한 언론사라는 나름의 근거에 입각해 ‘참고해선 안 될 언론’으로 찍힌 것으로 쉽게 짐작이 간다. 매뉴얼은 “여기(참고해선 안 될 매체들) 말고 소스가 전혀 없다면(그럴 리가 없지만) 검색팀장에게 문의”하라고 덧붙였다. 타사 기사를 참고할 경우 반드시 자기 문장으로 고쳐 저작권 시비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 매뉴얼에 따라 검색팀장에게 실제 문의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근석 스캔들 보도에서 ○○일보는 단독 보도한 ‘국민일보’를 언급하지 않고 ‘한 매체’란 표현으로 어물쩍 넘어가면서 참고하지 않은 모양새를 띠었다. 어뷰징이 아닌 정당한 보도 목적이었다면 저작권법상 인용보도는 허용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일보는 어디일까요.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