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과 금융권에 매서운 감원 바람이 불어닥쳤다. 인력 구조조정은 매년 초 연례행사처럼 진행됐지만 올해는 1년 내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특히 조선·중공업계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고, 금융권은 초저금리 악재까지 덮쳐 수익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A은행 김형순(가명·40) 과장은 요즘 입행 이후 가장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예퇴직 시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6세, 4세 아들 둘을 둔 김 과장은 아직 나갈 생각이 없다. 그러나 명퇴 시즌이 끝나면 곧 업무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명퇴로 나간 직원들의 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예전에 5명이 할 일을 지금은 2명이 담당하는 수준이다. 성과를 요구하는 윗선의 성화에 못 이겨 이곳저곳 전화를 돌려보고 사람도 만나지만 신통치 않다. 초저금리 탓에 예금 유치는 말조차 꺼내기도 민망하고 돈을 쓴다고 하는 사람도 예전 같지 않아 대출 영업도 어렵다. 동기들 가운데 몇몇은 올해 명퇴 신청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명퇴로 나간 선배들 중 그럴듯하게 성공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신한은행은 19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희망퇴직 인원을 확정했다. 6년 만에 일반직원으로 확대된 대대적인 희망퇴직이다. 오는 21일 확정된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올해 희망퇴직자는 지난해보다 배 정도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부지점장급 이상만을 상대로 신청을 받았지만 올해는 1975년 이전 출생자인 5급 대리까지로 대상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신청자도 310여명에 이른다. 은행 관계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대부분 희망퇴직이 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은행권에서 지난해 가장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이보다 형편이 좋지 못한 다른 은행들에선 명퇴 칼바람이 더욱 거세게 분다.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은행권에선 명퇴를 통한 인적 구조조정이 상시화된 지 오래다. 명퇴자들에겐 2∼3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과 자녀 학자금 등이 지원된다. 지점장급이면 개인당 3억∼4억원 정도를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은행 입장에선 인사 적체와 영업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금을 들여서라도 명퇴를 실시한다.
증권과 보험업계도 지난해 ‘자리 재배치’나 ‘희망퇴직’ 등 듣기 좋은 명목으로 감원 한파가 매섭게 몰아쳤다. 금융권에서 어깨 펴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한해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금융·보험업 일자리는 전년보다 2만4000개나 줄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5만5000명이 줄어든 이래 감소 폭이 가장 크다.
김 과장은 “다음은 내 차례라는 두려움과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연차가 늘어나면서 더욱 커지는 실적 압박이 삼중고로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은행, 살아남은 자의 비애] “다음은 내 차례” 공포·실적 압박 시름
입력 2015-01-20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