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우리도 ‘애국소비’란 것을 하고 싶다

입력 2015-01-20 00:05
미국 최대 쇼핑 대목인 ‘블랙 프라이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 27일 인천공항 세관검사장에 해외 직구족들이 인터넷으로 구입한 상품들이 가득 쌓여 있다. 국민일보DB

[친절한 쿡기자] 회사원 A씨는 마트에서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필요한 물건은 많습니다. 부모에게 선물할 건강보조제, 아이에게서 독촉 받는 장난감, 집에서 편안하게 입을 티셔츠 등 모두 마트에서 파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진열대 앞에서는 물건들을 살펴봤을 뿐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서둘러 돌아온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해외 쇼핑몰에 접속했습니다. 마트에서 살펴본 물건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인터넷 장바구니에 담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주문했습니다. 마트로 갔던 이유는 필요한 물건들의 실물 크기와 상태를 확인하고 구입을 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A씨는 물건들을 택배로 받을 겁니다. 적어도 1주일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A씨의 표정은 흡족한 듯 밝습니다. 마트 진열대 가격표에 적힌 금액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하게 구입했기 때문이죠. A씨는 해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구입하는 ‘직구족’입니다.

19일 회원수 44만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직구족 커뮤니티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해외 직구 시장규모를 집계한 관세청 자료가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관세청 전자상거래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구매는 1553만1000건이었습니다. 해외 쇼핑몰에 접속한 우리나라 네티즌이 2초마다 한 번씩 결제를 클릭한 셈입니다. 금액은 모두 15억4491만5000달러입니다. 한화로 환산하면 1조6000억원입니다. 정부가 올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가로 편성한 예산(1조1000억원)보다 5000억원이나 많은 금액입니다.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 가운데 일부는 내수 침체를 부추긴 ‘원흉’으로 직구족을 지목합니다. 안에서 벌고 밖으로 뿌린다는 것이죠. 하지만 직구족에게 할 말은 있습니다. “나도 우리나라 상품과 시장을 이용하는 ‘애국소비’라는 것을 하고 싶지만 월급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높은 세금을 매긴 정부와 많은 이윤을 남긴 기업이 고민할 문제다.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돌리지 말라”는 반박입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돈 더 내는 데 신물났다(Fed up of paying over the odds)’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은 해외에서보다 더 많이 지불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제 기업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누린 특권을 버리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습니다. 직구족은 이런 소비자의 특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했죠. 정부와 기업은 ‘애국소비’를 호소하기 전에 소비자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