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할머니들은 왜 육아전선에 나서게 됐을까. ‘무상보육’의 시대인데 ‘돈 없이는’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곳곳에 널려 있다. 전문가들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노년을 맞은 할머니들이 무상보육의 빈틈을 메워주고, 그 육아노동의 대가로 부족한 노후자금을 충당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박모(32·여)씨는 지난해 출산휴가 3개월을 마친 뒤 복직해야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자니 아이가 너무 어렸다. 양가 어머니는 모두 일을 했다. 맞벌이를 포기하기엔 경력이 아깝고 월 180만원 박봉이지만 한 푼이 귀했다.
결국 친정어머니(60)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머니의 월수입은 약 80만원. 박씨는 양육수당 20만원(12개월 미만 영아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돈)에 40만원을 보태 60만원을 드리고 아이를 맡겼다. 돌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어머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오후 3시까지 가사도우미를 해서 월 60만원을 번다. 이어 오후 5∼8시 손녀를 봐주는 어머니에게 박씨는 20만원을 양육비로 드리고 있다.
어린이집 무상보육 혜택을 보려 해도 이것저것 ‘추가 비용’이 따라 붙어 부담스러운 30대 자녀와 돈을 더 벌지 않으면 노후가 불안정한 60대 부모가 박봉과 시간을 쪼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미완의 무상보육’과 ‘무대책 고령화’가 빚어낸 현실이다.
지난해 저출산 대책 예산은 사상 최대인 14조8927억원이었다. 이 중 10조원 정도가 무상보육에 투입됐다. 정부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61조3541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2008년 1.19명에서 2013년 1.19명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무상보육으론 저출산 해결이 요원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무상보육의 핵심은 어린이집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만으론 보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종일제 국공립 어린이집,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는 직장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어린이집 90%를 민간에 맡겨둔 상태다.
박씨의 출근 시간은 오전 7시30분. 딸이 다니는 민간 어린이집은 오전 8시30분부터 아이를 받는다. 1시간 보육 공백이 생긴다. 박씨가 퇴근해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8시인데 어린이집은 오후 5시면 아이를 보낸다. 다시 3시간 공백이 생긴다. 그 틈을 박씨 어머니가 메워주고 있다. 박씨는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박씨가 어머니에게 다달이 건네는 돈은 ‘사례금’이나 ‘용돈’ 차원이 아니라 어머니가 손녀를 돌보며 포기한 월급의 일부다. 어머니는 어린 손녀를 두고 출근하는 딸에게 돈을 받는 게 기껍지 않았다. 노후 준비를 충분히 못한 자신을 탓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 인구의 14%가 노인인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노인 2명 중 1명(2012년 기준 49.2%)은 상대적 빈곤 상태로,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
김은설 육아정책연구소 육아정책연구실장은 19일 “육아휴직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과 근로시간이 너무 긴 근무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무상보육 정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상보육이 됐는데도 조부모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무상보육 정책에 추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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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20 02:22 수정 2015-01-20 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