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생각해봅시다] 아이 키워주는 친정엄마께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입력 2015-01-20 03:20 수정 2015-01-20 09:05

“육아휴직 마치면 돌쟁이 우리 아들 친정엄마께 맡기자. 그런데 얼마나 드려야 할까?”

9개월 육아휴직을 끝내고 이달 말 복직을 앞둔 장현주(가명·33)씨는 최근 남편에게 이렇게 물었다. 남편의 대답은 “고민해보자”였다.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불안했다. 특히 요즘은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렇다고 육아도우미를 쓰자니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문제가 있는 데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친정엄마가 제일 좋겠는데, 노인이 하루 종일 젖먹이 돌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엄마도 노후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 한 달에 얼마를 드려야 하지?’ 이 문제의 답을 찾기까지 부부는 온갖 것을 고려해야 했다.

장씨 부부의 월 소득은 550만원 정도다. 친정 근처인 경기도 일산에 아파트 전세를 얻으며 6000만원 대출을 받았다. 대출원금을 갚기 위해 다달이 200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 대출이자로 매달 20만원쯤 나간다. 공과금·보험료·교통비 등 고정 지출과 생활비·용돈·경조사비를 빼고 나면 100만∼130만원 남는다.

IT 업체에서 일하는 남편은 야근이 잦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장씨도 퇴근이 늦다. 친정엄마에게 애를 맡긴다는 건 노인에게 하루 12시간 이상 육아노동을 시키는 일이다. 장씨는 출산·육아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살펴봤다. 그곳에 이른바 ‘시세’라는 게 있었다. 맞벌이 여성들이 “나는 얼마 드린다”고 밝힌 금액의 평균을 어림해보니 월 100만원쯤 됐다. 장씨 부부에겐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비슷한 처지의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20만원부터 150만원까지 제각각이다.

남편이 ‘20만원’ 카드를 꺼냈다. 지인이 어머니에게 갓 백일 지난 아이를 주 5일 맡기고 월 20만원을 드렸다는 것이다. 20만원은 정부가 지원하는 12개월 미만 영아 양육수당 수준이다. 장씨는 “아기 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 20만원은 안 된다”고 딱 잘랐다.

부부는 최저 30만원부터 최고 100만원 사이에서 고민하다 ‘50만원+현물’로 결정했다. 장씨는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마음으론 100만원도 부족한데 남들만큼 했다간 쪼들리니까…”라고 말했다.

저출산의 늪에 빠진 한국사회를 이나마 지탱해주는 건 ‘할머니 육아노동’의 힘이다. 맡길 곳이 없어서, 키우기가 버거워서 애 낳기를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그래도 낳아볼 용기를 내는 건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란 ‘빽’이 있어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2년 ‘전국 보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5세 이하 3명 중 1명(34.4%)은 조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의 70% 정도는 조부모, 특히 할머니에게 육아를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 육아노동에 얼마의 가치를 매겨야 할까. 장씨 부부의 고민을 해결해줄 만한 기준이 있을까. 대개는 장씨처럼 알음알음 알아보고 형편에 따라 결정한다.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다보니 손주 돌봄에 ‘적정 가격’을 매기는 건 복잡하고 예민한 일이다.

김은설 육아정책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19일 “무상보육의 빈틈을 할머니들이 메워주고, 할머니들은 자녀가 제공하는 양육비로 부족한 노후자금을 메우는 상황”이라며 “가족관계에 경제적 보상이 등장하는 게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된 만큼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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