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3) ‘크레디트’에 관하여

입력 2015-01-20 02:20
볼사리노 포스터

‘옛날’ 영화와 ‘요즘’ 영화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오프닝 크레디트이다. 영화가 시작될 때 주요 출연진과 제작진을 소개하는 ‘인물 자막’인데 요즘 영화들에서는 대체로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옛날 영화를 볼 때 시작 부분에서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 등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오프닝 크레디트와 관련해 재미있는 것으로 거물급 스타들이 공연하는 경우 누구 이름이 더 비중 있게 처리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양대 스타였던 알랭 들롱과 장 폴 벨몽도가 같이 나왔던 영화 ‘볼사리노’(1970). 막상 뚜껑을 열자 벨몽도의 이름이 스크린의 앞쪽이랄 수 있는 좌측에, 들롱이 우측에 내걸렸다. 알고 보니 영화의 제작까지 맡은 들롱이 벨몽도를 출연시키기 위해 양보한 것이었다나. 이처럼 오프닝 크레디트는 그 나름대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엔딩 크레디트도 마찬가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주연한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서는 엔딩 크레디트의 말미에 이런 문구가 뜬다. ‘세르지오와 돈에게 바친다.’ 세르지오와 돈은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을 가리킨다. 각각 ‘황야의 무법자’ 3부작과 ‘더티 해리’를 통해 무명이었던 이스트우드를 톱스타로 출세시키면서 연출 수업까지 시켜준 감독들이다. 이스트우드가 인생 말년에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느낀 소회가 물씬 풍겨난다. 어차피 남들 보라는 헌사인 바에야 오프닝에 들어가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긴 오프닝 자체가 없어지고 있는 마당에 무리한 주문일지도.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