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를 하든 그는 멋있다. 얼굴에 흙이 묻어도 그렇고 거지꼴로 넝마주이를 해도 그렇다. 진흙탕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액션을 펼쳐도 마찬가지다. 유하 감독의 신작 ‘강남 1970’에서 종대 역을 맡은 배우 이민호(28) 얘기다. 영화에서 첫 주인공을 꿰찬 그는 재벌 2세의 이미지를 버리고 거친 캐릭터를 선보인다. 하지만 기존의 귀족 스타일이 자꾸 어른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행색이 아무리 남루해도 멋지던데 좀 어색하지 않았나?” 잘 생긴 꽃미남 배우의 대답이 돌아왔다. 싱글싱글한 미소와 함께. “영화를 순서대로 찍었는데 처음에는 좀 그랬죠. 강하고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갈수록 몸에 잘 맞았어요. 제가 원래 그런 남자거든요.”
2006년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꽃보다 남자’ ‘개인의 취향’ ‘상속자들’ 등 주로 드라마에서 활동했다. “영화는 무게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잖아요. 그걸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었어요. 그 시기가 20대 후반이고요. 영화를 찍고 나니 기다렸다 하길 잘했다 싶어요. 그동안 달달한 연기만 했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돼 만족스러워요.”
유 감독은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비열한 거리’에서 조인성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이민호다.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잘 어울리는 얼굴을 가졌고, 신성일과 알랭 드롱 등 정통파 미남배우의 계보를 이을 배우”라는 게 캐스팅 이유다. 드라마 ‘상속자들’이 방영 중이어서 기다렸다가 끝나자마자 3일 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시나리오를 받아 봤죠. 제가 현재의 강남 남자 느낌이 물씬 나는 배우인데 아무것도 없던 70년대의 강남에 들어가서 연기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대중이 호기심 있게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원래 유 감독님 팬이기도 하고요.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힘을 빼는 데 집중했어요. 등장인물들이 잡으려는 부귀영화가 이유 없는 욕망이 아니라서 공감하기는 쉬웠어요.”
극중 종대는 고아원 출신으로 판자촌을 전전하다 쫓겨나 결국에는 조직폭력에 가담하게 된다. 강남 개발의 이권 다툼에 뛰어든 그의 꿈은 자신만의 땅을 갖는 것이다. 이민호는 “종대는 그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집,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을 밥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막막하고 씁쓸한 그 시절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처럼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스무 살 때 크게 다쳐 1년가량 병원신세를 지면서 앞이 안 보였죠. 스물네 살 때까지는 암흑기였어요. 탈출구도 없었고 막막한 심정이었어요. 그러던 중 ‘꽃보다 남자’에 캐스팅되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놓지 않은 시기가 20대인 것 같아요. 종대는 그런 꿈을 쫓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만큼 책임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는 “20대의 소년성이 끝나기 전에 할일이 너무 많아 연애할 시간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일년에 드라마와 영화 한 편씩은 할 계획이에요.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며 완전히 풀어지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판타지 세계에서나 존재할 것 같았던 이민호는 보기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제가 원래 강한 남자거든요”… ‘강남 1970’서 재벌 2세 이미지 벗고 거친 남자로 거듭난 이민호
입력 2015-01-21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