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1유로=1달러 눈앞 유로존의 위기… 단일통화 시험대

입력 2015-01-20 03:00



유로화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유로 환율은 2003년 11월 이후 최저치인 유로당 1.1460달러를 찍었다. 이후 1.15달러 선으로 오르기는 했으나 이것 역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1유로=1달러’ 시대 임박=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유로와 달러가 등가(1유로=1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유로 가치가 달러보다 낮아 환율이 1달러 이하이던 시기는 유로화 도입 초기 3년 동안뿐이었다. 2002년 말 이후 유로는 항상 달러보다 비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로·달러 등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정치와 경제가 모두 유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어 올해 달러와 등가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꽤 그럴듯하다”고 밝혔다. 노무라홀딩스의 옌스 노드빅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22일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내놓으면 유로 가치 하락이 더 가팔라져 6개월 안에 유로·달러 등가가 실현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달러·유로 환율이 올해 말 1.08달러로 떨어진 뒤 내년 말에 등가를 이루고 2017년 말 90센트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음울한 유럽 전망 때문에 유로화 추락=최근 유로화 약세의 주요 배경으로는 유럽 경기 부진 심화와 그리스 정정 불안, ECB의 추가 양적완화가 꼽힌다. 지난 15일 스위스 중앙은행이 ECB의 양적완화로 스위스프랑 가치가 급등할 경우 더 이상 환율을 방어할 여력이 없다며 환율 하한선(유로당 1.20스위스프랑)을 전격 폐기한 것도 유로 급락세를 부채질했다.

사실 모든 원인은 경제 문제로 수렴된다. 유럽 경제가 활기를 되찾았다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재발하지 않았을 테고, ECB가 양적완화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유럽 경기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어 유로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끄러지는 유로’란 제목의 기사에서 “디플레이션은 시작됐고 독일 경제는 흔들리는 중이며 유로존 각국의 성장 전망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한데 담대하게 나서는 정치인은 없고 투자를 북돋울 만한 ‘빅 아이디어’도 없으며 다들 ECB만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위태롭게 계속되는 거대한 실험=1999년 1월 도입된 유로는 처음엔 실체가 없는 문서상의 통화로 정부 간 거래나 은행 간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다 2002년 지폐와 동전이 발행되면서 실제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언어와 문화, 경제 상황이 다른 나라들이 같은 화폐를 쓰는 사상 초유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단일 통화의 장점이 발휘되면서 유로는 상승세를 탔고 달러에 버금가는 국제통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08년 7월 유로당 1.60달러를 찍으며 유로 가치가 정점에 올랐을 때부터 유로존의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발(發) 금융위기는 그리스발 유로존 재정·금융위기를 잉태시켰고, 위기는 단일 통화의 결점을 부각시켰다. 경제 체력이 제각각인 나라들이 동일한 통화를 사용하면서 재정정책은 각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화를 부른 것이다.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는 “단일 통화를 쓰면서 재정정책과 은행 시스템은 나라마다 다른 과도기적 상황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위기가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유로존 해체보다는 유지가 덜 고통스럽다”=유로화 붕괴론은 유로존에 크고 작은 위기가 올 때마다 제기됐고, ‘1유로=1달러’를 향해 가는 지금도 나오고 있다. KB투자증권 문정희 연구원은 “유로가 달러와 1대 1로 교환되면 유로존의 응집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최악의 경우 유로존 탈퇴 러시로 유로화가 붕괴되면 부채가 많은 남유럽 국가들은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단 지금의 유로화 약세는 유로존 수출 환경을 개선시켜 역내 디플레 우려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유로화 가치가 10% 떨어질 경우 유로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33% 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 3∼5일 열린 전미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서 미국의 석학들도 유로존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ECB의 국채 매입을 통한 유로화 평가절하와 시장 친화적 정책을 통한 내수 부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EA 총회에 참석한 학자 대부분은 유로존이 심각한 고비는 넘겼을지 모르지만 ‘만성적 위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당장 유로존과 유로화가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는 “유로존을 깨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덜 고통스럽기 때문에 유로화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도 “유로라는 단일 통화는 역사적 재앙이 될 수 있지만 쉽게 붕괴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석학은 유로존 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역내 은행 시스템 통합, 유로채권 발행을 통한 점진적 재정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