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 생존자가 지난해 기준 123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암환자로 생존(2013년 1월 1일 기준)한 것으로 확인된 암 경험자 수는 123만4879명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5년간(2008∼2012년) 발생한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이하 생존율)은 68.1%로, 암환자 3명 중 2명이 5년 이상 생존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2001년에서 2005년까지의 생존율 53.8%보다 14.1%포인트 오른 수치이다. 특히 암환자 5년 생존율은 1993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암 생존자가 늘면서 이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신규 암환자 수가 늘고, 5년 이상 장기 생존 암환자들이 함께 증가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만성질환 관리나 정신질환 치료와 관리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장기 암 생존자들에 대한 사후관리를 암환자 개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암 치료 전문가와 보건소, 동네의원 등 일차의료기관이 협력하는 장기 암 생존자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암환자 정신적 고통 크다=대다수 암환자들은 암치료 후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해 또 다른 질환에 노출되거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거나 자살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암 경험자 또는 암 생존자가 120만명을 넘어서면서 ‘암은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바뀌고 있지만, 많은 수의 암환자들이 정서적, 신체적 고통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5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에 따르면 2013년 암 진료 환자 중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환자는 3만177명(남성 1만2686명, 여성 1만7491명)으로 확인됐다. 암 진료 후 자살 등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우울증’ 진료를 받은 환자는 6657명(남성 2703명, 여성 3954명)이었다. 또한 국내 한 자료에서는 암 진단 후 5년 이상 경과한 집단에 비해 암 진단 6개월 미만인 집단에서 자살위험도가 남성 2.6배, 여성 3배 높았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10년 국립암센터 윤영호 박사팀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93년부터 2002년 사이 암 진단을 받은 환자 81만명을 대상으로 2005년까지 추적 조사한 결과, 암환자의 자살률이 일반인에 비해 2배가량 높은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암환자 자살과 관련, 충북의대 박종혁 교수와 국립암센터 이수진 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암 진단 후 평균 3년이 지난 암 생존자 10명 중 2명은 우울감을 경험했고, 우울감을 경험한 암 생존자 10명 중 6명가량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기 암 생존자 평생 관리 필요=이처럼 장기 생존 암환자들은 관리를 받지 못하거나 스스로 관리를 하지 못하면, 암과 무관한 만성질환이나 이차암 또는 암재발 등의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 특히 암수술과 항암치료 후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정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거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해질 수 있고, 영양조절이나 식단관리, 재활과 관련된 올바른 정보를 얻지 못해 암환자와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적극적인 ‘암 생존자 관리’이다. 이미 선진국들은 장기 암 생존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시행하며 이를 건강보험 수가에 반영하는 등 정책 집행과 연구 데이터 축적을 통해 효율적인 관리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대병원암병원 주최로 열린 ‘국제암생존자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MD앤더슨암센터 루이스 폭스홀 교수는 “체계화된 전문교육과 암 전문의료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1차 의료기관에서 암 생존자들의 건강관리를 담당해야 한다. 암 생존자들에 대한 관리는 암 진단 시점부터 고려돼야 하고, 환자 본인뿐 아니라 투병 경험을 공유하는 가족 구성원과 친구, 돌봄 제공자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암 생존자 관리를 보다 체계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암 치료 후 장기 생존자들에 대한 연구, 교육, 관련 정책개발과 암 생존자 관리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목표로 지난해 설립된 한국암생존연구회(회장 김성·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김성 회장은 “장기 암 생존자들이 늘면서 암 완치만을 목적으로 하는 큐어(cure)의 개념이 이제는 암 치료와 그 이후에 대한 생존자 관리를 포괄하는 케어(care)로 바뀌고 있다. 이는 ‘암은 평생 간다’는 개념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암 생존자 관리가 필요한 시대가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의료계 함께 머리 맞대야=암이라는 질환 특성상 암 생존자에 대한 전반적인 치료는 암 전문의들이 주도하지만, 수술과 항암치료 후 관리는 일차의료기관이나 보건소 등에 연계해 관리하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암 생존자들은 평상시 식단 등 영양관리와 체중조절, 재활과 운동, 심리·정서적인 지지 등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서의 암 생존자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김성 회장은 암 생존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확산과 합의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암 생존자 관리라는 개념이 부족하고, 관련 연구 데이터 등이 없기 때문에 장기 암 생존자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국가 차원에서 국가암검진사업과 국가암등록통계 등을 통해 암환자를 관리하고 있지만, 관련 프로그램이나 정책이 접근성이 떨어지고 실제 의료 현장이나 암 생존자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체계적인 암 생존자 관리는 암 경험자(치료 중이거나 치료 이후)들의 또 다른 암 재발이나 질환 발생 위험을 낮춰 국가 차원의 의료비 절감에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 회장은 “암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보건소 등 지역사회나 일차의료기관과 연계해 치료 후 관리를 제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암 생존자들의 삶의 질, 환자 보호자들의 삶의 질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다”며 “정부도 정책적으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병기 기자 songbk@kukimedia.co.kr
[암과의 동행] 암 생존자 123만명 돌파… 삶의 질 높이는 사후관리 대책 세우자
입력 2015-01-19 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