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0, 1대 0, 1대 0. 2015 호주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한국 축구가 A조 조별리그에서 거둔 성적이다. “믿을 만한 원톱 공격수가 없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고민거리다.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실력이 출중한 외국인 공격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선발하면 된다. 그러나 아직 귀화한 축구선수가 태극마크를 단 경우는 없다
세계 축구계에서 귀화선수는 낯선 존재가 아니다. 각국은 전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켜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다. 한국 프로축구에도 사리체프(신의손), 데니스(이성남·이상 러시아), 사비토비치(이싸빅·크로아티아) 등 귀화선수들이 있었지만 국가대표로 발탁되진 못했다.
2002 한·일월드컵이 열리기 전 K리그에서 활약 중이던 외국인 공격수 샤샤(유고슬라비아), 수비수 마시엘(브라질) 등의 귀화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으나 성사되진 않았다.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이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2012년에는 K리그를 호령하던 에닝요(브라질)가 특별귀화 대상에 올랐지만 결국 없었던 일이 됐다. 왜 한국 축구 대표팀엔 귀화선수가 없는 걸까?
세계적으로 귀화선수는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카타르식, 독일식, 일본식이 그것이다. 한국이 눈여겨볼 부류는 일본식이다.
자국민 비율이 전체 인구 중 20% 안팎에 불과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쿠웨이트 등 아라비아 반도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는 사실상 ‘용병 국가 대표팀’을 운영한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들을 ‘오일 머니’로 유혹해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발탁하는 것.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카타르는 호주 아시아컵에 출전한 대표팀 23명 중 11명을 귀화선수로 채웠다. 카타르 대표팀 내 귀화선수는 모하메드 문타리(가나)를 비롯해 카심 부르한(세네갈), 알마흐디 알리 무크타르, 빌랄 모하메드, 마지드 모하메드(이상 수단), 카림 부디아프, 부알렘 쿠키(이상 알제리), 모하메드 압둘라(콩고), 아흐마드 마크수드(이집트), 알리 아사달라(바레인), 이브라힘 마지드(쿠웨이트) 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쯤 되면 국가 대표팀이 아니라 클럽팀이라고 해야 한다.
독일식 귀화 국가대표는 카타르식과는 많이 다르다. 과거 독일 축구엔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게르만 순혈주의’가 존재했다. 그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독일은 1990 이탈리아월드컵 우승 이후 2개 월드컵에서 내리 8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독일은 순혈주의를 버렸다. 독일은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독일인 부모에게서만 태어난 사람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없앴다.
독일은 귀화선수와 이민자 후손을 받아들여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선 터키에서 귀화한 메수트 외칠, 폴란드계인 루카스 포돌스키와 미로슬라프 클로제, 튀니지 출신의 사미 케디라, 가나 출신의 제롬 보아텡, 알바니아계의 슈코트란 무스타피 등을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이들은 독일에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때 독일로 건너와 독일 축구를 해 온 선수들이다. 핏줄만 다르지 사실상 독일인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일본화 된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받아들였다. 귀화 국가대표 1호인 라모스 루이(브라질)는 20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12년 동안 뛴 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1989년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된 라모스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했다. 일본인이 다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40세 넘어서까지 J리그에서 뛰었고, 현재도 일본 축구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2013년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일본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로페스 와그너(브라질)도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10년 정도 한 뒤 귀화를 했고, 그 후에 국가대표로 발탁돼 1998 프랑스월드컵에 출전했다. 일본으로 귀화해 일장기를 가슴에 단 선수들은 J리그에서 오랜 시간 뛰며 일본 문화에 동화됐고, 실력이 뛰어난데다 일본 축구를 위해 헌신할 각오가 돼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전북으로 돌아온 에닝요의 경우 대한체육회는 “에닝요가 국적법 제5조에 명시된 국어능력 및 풍습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국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민족 순혈주의’ 때문에 에닝요의 귀화가 무산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대한축구협회와 에닝요의 ‘목적’에 의문을 품었다. 협회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에닝요를 귀화시켜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에닝요는 한국 축구의 발전보다 월드컵 출전이라는 개인적인 욕심이 더 강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욱이 에닝요는 한국어를 할 줄도 몰랐다. 일본 축구 대표팀의 귀화선수들과는 분명히 달랐던 것이다.
한준희 축구 해설가는 “이제 한국 축구 대표팀에서도 귀화선수가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귀화선수를 국가대표로 발탁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한국무대에서 오래 뛰며 한국 문화에 동화돼 있어야 한다. 또 실력이 국내선수보다 월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K리그에선 귀화를 권유할 만한 외국인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뛰어난 데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으로 살아갈 마음가짐이 된 외국인 선수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대표선수로 발탁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K리그의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은 하향평준화 돼 있다. 한 시즌에 20골씩 터뜨리던 데얀급 공격수를 찾아볼 수 없다. A매치 그라운드를 누비는 귀화 태극전사를 보려면 K리그에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이 몰려들어야 하고, 이들이 K리그에 정착하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축구 문화가 발전해야 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축구 순혈주의? 한국엔 귀화 국가대표 왜 없을까
입력 2015-01-20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