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들이 떨고 있다… 일상화된 보복범죄

입력 2015-01-19 03:45

안산 인질범 김상훈(46)씨의 아내 A씨가 남편의 상습폭행을 신고하지 못한 것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A씨는 지난 7일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허벅지를 찔리고 나서야 겨우 경찰서를 찾았다. 남편에게 폭행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지만 차마 고소장을 내지 못했다. 그는 “보복이 두려워 그냥 돌아왔다”고 말했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질 살인극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피해자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보복범죄는 2011년 162건에서 2013년 396건으로 급격하게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보복범죄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8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연구원)이 대검찰청에 제출한 ‘보복범죄의 원인 및 분석을 통한 피해자 신변보호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보복범죄는 사소한 범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이 2012∼2013년 확정판결을 받은 보복범죄 363건을 조사한 결과 보복범죄 원사건(보복범죄의 원인이 된 사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범죄는 주취폭력(41.9%)이었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행패를 부린 뒤 직원으로부터 신고를 당하면 다시 찾아가 협박·폭행·재물손괴 등을 일삼는 패턴이다.

스토킹(8.8%)과 가정폭력(5.0%)도 보복범죄의 주요 계기다. 스토킹은 연인으로부터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받은 이후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78.1%)이다. 가정폭력은 남편의 주취와 우발적 분노, 의처증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처럼 보복범죄의 피의자와 피해자는 알고 지내는 사이가 대부분이다. 신고자가 누구인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를 피의자가 뻔히 아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보복범죄 10건 중 7건이 경찰 수사 단계에서 벌어졌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스토킹이나 가정폭력은 경찰이 피의자를 조사한 직후 1일 이내에 보복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피의자가 어디에 가면 피해자를 만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는 점은 두려움의 뿌리다. 보복범죄는 피해자의 집(16.3%)이나 사무실·가게(48.9%)에서 대부분 벌어졌다.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찾기 전까지 수없이 망설이게 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보복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를 조사할 때 ‘피해자를 찾아가 협박·폭행 등을 저지를 경우 보복범죄로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조서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석방을 앞둔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보복범죄 방지를 위한 교육도 시행할 예정이다. 박지영 대검 피해자인권과장은 “단순히 신고를 한 것에 불만을 품고 피해자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범죄인지 사전에 경고해 피의자들의 보복심을 위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검과 법무부는 피해자접근금지명령제도 등을 보복범죄 위험이 높은 다른 범죄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재 가정폭력 사건에 적용하고 있다. 수사단계에서 범죄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임시로 피해자를 보호 조치할 수 있도록 특정범죄신고자 보호법 등 법령을 개정할 생각이다.

독일은 폭력·스토킹 범죄의 경우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에 대해 퇴거명령권과 접근금지명령권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