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각한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과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 두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자오쯔양 서거 10주기를 맞은 지난 17일 생전 15년 동안 가택연금 생활을 했던 베이징 자택에 가족과 지인 등 수백명이 모여 추모행사를 열었다. 지난해보다 다소 느슨해졌다고는 하지만 참석 인사에 대한 출입통제는 여전했다. 해외 언론의 취재는 철저히 제한됐고 일부 홍콩 언론만 출입이 허용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8일 전했다.
중국 정부와 언론은 자오쯔양 서거 10주기에 대해 침묵했다. 다만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논평 기사에서 “침묵 역시 일종의 태도 표명”이라고 밝혔다. 10년 전 평가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신화통신을 통해 자오쯔양 서거 당시 “당과 인민사업에 유익한 공헌을 했다. 1989년 정치적 풍파 속에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등 54글자로 된 짧은 글로 그의 일생을 평가한 바 있다.
공산당 최고지도자들은 사후 베이징 인근 바바오(八寶) 혁명열사 공원묘지에 안장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자오쯔양의 유골은 2013년 사망한 부인 량보치 여사와 함께 현재 자택에 보관돼 있다. 중국 당국이 중간 간부들이 묻히는 묘역을 제안했지만 유가족이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해 후야오방은 지난해부터 재평가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4월 후야오방 서거 25주기를 맞아 후진타오 전 주석은 고향 생가를 찾아 헌화했다. 전 주석이라고는 하지만 현 시진핑 주석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후야오방의 고향 생가는 국가중점 문물로 승격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맞아 제작된 드라마 ‘역사 전환기의 덩샤오핑’에 후야오방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5일 중국 공산당신문망은 올해 기억해야 할 ‘4대 기념일’을 꼽으면서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11월 22일)을 포함시켰다. 인터넷 통제도 풀려 후야오방에 대한 추모와 긍정적인 평가의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오쯔양과 후야오방은 모두 덩샤오핑에 반대했다 실각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천안문 시위를 유혈 진압하려는 덩샤오핑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오쯔양은 1989년 5월 19일 천안문 광장을 찾아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며 시위에 직접 뛰어들었다. 하지만 총서기 재임 당시 언론 자유를 포함한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다 실각한 후야오방은 89년 4월 15일 사망 이후 시위가 거세졌지만 어쨌든 사후의 일이다.
시 주석과의 인연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은 후야오방을 끝까지 지지하고 보호하려 했다. 또 시 주석과 후야오방의 장남 후더핑은 어린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후야오방의 정치적 재평가 작업에 유리한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여전히 禁忌 인물 vs 복권 움직임 활발
입력 2015-01-19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