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들어서면 언제나 코끝에 진한 커피향이 전해진다.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이 느껴진다.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통 유리벽, 초록색 ‘세이렌(바다의 요정)’ 로고가 그려진 컵, 커피와 어울리는 재즈 음악, 그리고 무선인터넷 서비스까지. 어느새 ‘스타벅스’는 커피뿐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공간으로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 이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355㎖·톨 사이즈) 가격이 전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비싸다는 뉴스였다. 뉴욕에서 2477원인 아메리카노 가격이 서울에선 4100원으로 1.6배 비싸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보다 서울의 커피값이 높다. 한국 소비자만 봉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1999년 한국에 상륙한 이래 고가 정책을 펼쳐온 스타벅스는 내심 ‘그래도 계속 마실 거잖아’라고 여유를 부리고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소식이 전해진 지 사흘 만에 내놓은 4만9000원짜리 ‘스타벅스 럭키백’은 3시간 만에 완판됐다. 이렇듯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데 긴장이나 하겠나.
그런데 스타벅스 커피가 이렇게 비쌀 이유가 있긴 한 걸까. 영국 저널리스트 팀 하포드의 저서 ‘경제학 콘서트’에 따르면 커피 원액과 전기요금 수도요금 종이컵 설탕 우윳값 등을 다 합쳐도 커피 판매가의 20∼30% 정도다. 원두값으로만 따지면 원가가 5%라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다른 비용, 그리고 브랜드 가치 등을 더한 가격이 4100원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원가구조는 만국공통일 터인데 서울의 임대료와 인건비만 유독 높을 리 없다. 뉴욕 도쿄 런던은 해마다 주거비가 가장 비싼 도시로 서울에 앞서 꼽힌다. 미국과 일본의 스타벅스 바리스타 시급은 1만원이 넘는다. 반면 한국은 법정 최저임금 5580원보다 약간 높은 5700원이다. 임대료나 인건비로 비싼 커피값을 설명할 수 없다.
스타벅스는 아메리카노 가격을 2009년 3300원에서 2014년 4100원으로 5년 만에 800원이나 올렸다. 반면 일본은 엔저와 가격동결 정책으로 점점 가격이 내려가 지금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커피값이 오를 때마다 주된 이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었다. 원가 비중은 겨우 5% 정도인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그런 논리라면 요즘 우유가격 하락으로 우유가 남아돈다는데 왜 카페라테 가격은 내리지 않는 걸까. 또 가파른 국제유가 하락은 커피가격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
따져보면 스타벅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커피빈, 카페베네, 엔젤리너스, 투썸플레이스 등 주요 커피전문점의 가격도 대략 비슷하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커피숍을 가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업계 1위 업체인 스타벅스가 슬쩍 가격을 올리면 다른 곳도 눈치를 보며 슬슬 그 가격에 맞추다보니 그렇게 된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진작부터 있었다. 그런데 이를 감독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이 비슷한 시기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는 담합으로 볼 수 없다고 뒷짐 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에도 커피산업은 유독 가파르게 성장했고, 커피 소비량도 급속히 늘었다. 한국인은 밥·김치보다 커피를 자주 먹는다는 발표도 있었다. ‘커피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러니 커피 가격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해놓고, 슬금슬금 계속 올려온 커피가격. 이젠 조정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이라도 벌이기 전에 스타벅스가 먼저 나서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는 봉이 아니다.
한승주 산업부 차장 sjhan@kmib.co.kr
[뉴스룸에서-한승주] 스타벅스 커피가 씁쓸한 이유
입력 2015-01-19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