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는 2015년 양국 관계의 모습은 우려를 넘어 참담하다. 향후 새로운 50년의 한·일 관계를 구축하기는커녕 세계가 양국 관계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원인 제공은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음은 미국의 지일파 학자들의 일본에 대한 충고가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대표적 지일파 학자인 제프리 호넝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과거사 논쟁에서 국제사회가 결코 일본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 눈높이’와 ‘국제사회도 수용할 수 있는’ 협의안이 제시되어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외치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 총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행보를 보면 쉽게 방향 전환할 것 같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한·일 간 역사영토 문제에서 우리가 깨끗이 ‘해결되었다’고 인식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 포용력 선제적으로 과시해야
첫째, 역사문제에 대해 사과하라면 최소한 묵인의 형태로라도 수용하던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해 강한 일본을 건설하겠다는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이 역사문제로 압박하는 것을 외교적 공세로 인식하고 이에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강한 일본을 염원하는 여론은 이러한 행동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욱이 작년 중의원 선거에서의 압승으로 장기 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한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박 대통령의 임기 내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주위에 밝히기도 했다.
둘째, 한국 내 ‘국민 눈높이’의 수렴이 쉽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민주화로 국민여론이 외교정책 영역에서도 중요해지면서 국민이 반대하는 외교를 펼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정부는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도 외교의 대상으로 삼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여론은 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원칙론에서 정치적 타결을 제안하는 현실론까지 다양하다. 또한 이렇게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인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 개선의 ‘입구’로 한정하는 것은 현명한 외교 전략이 아니라는 주장이 들리기 시작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변화된 모습을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입구론’이 아닌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정부가 제3의 위원회를 구성해 해결하는 ‘과정론’의 인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치국면을 타개할 방안은 없을까. 가장 확실한 것은 일본 정부가 사죄를 명확히 하는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과거사 반성은 ‘정치적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이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국제사회의 여론, 특히 미국의 여론을 우리의 우호세력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세계 여론을 우리쪽으로 끌어들일 수도
2012년 아베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상상황에 대해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확산되던 한·일 양비론은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자 일거에 사라지고 아베 총리에게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아베 총리의 자책골로 우리 정부는 외교적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조건 없는 정상회담에 응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여 세계 여론을 향해 외교적 포용력을 과시함은 어떨까. 그 시기는 8월 15일 예상되는 ‘아베 담화’ 발표 이전에 성사시켜 공을 일본 정부에 넘기는 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행보로 한국에 대한 세계 여론은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며, 미국의 대일본 인식이 변하고 중국에 치우쳐 있다는 우려도 불식될 것이다. 일본 국내의 여론도 좋아지고 친한 세력의 발언권도 강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자세에 변화가 없으면 일본 외교에 ‘무거운 역사의 짐’으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과감한 행보에 대한 우리 여론의 이해가 요구됨은 물론이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한반도포커스-이명찬] 조건 없는 한·일 정상회담 열자
입력 2015-01-19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