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벌써 4주째다. 시간은 정말 살처럼 빠르다. 새해 들어 ‘광복·분단 7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등이 올해의 주요 의제로 꼽혔다. 그만큼 기대도 크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바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은 말만 그럴싸할 뿐, 항간의 분위기는 10년 전 40주년 때와 크게 대비된다. 2005년은 ‘한·일 우정의 해’로 명명돼, 양국은 잔치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들뜬 모습은 다 사라지고 지금은 썰렁함 뿐이다. 50주년을 기념하는 로고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원인은 뭘까. 양국의 주장이 겉돌고 시선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서는 “일본의 자세 전환이 중요하다”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의 말 속에 ‘국교정상화 50주년’은 아예 없었다.
지난 주말 일본 미디어의 서울주재 특파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화제는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이번에도 일본 기자에겐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질의응답 진행이 부자연스러웠다’ ‘이전과 달리 활발한 기자회견이었다’ 등의 얘기가 나왔다. 무엇보다 50주년이란 큰 매듭으로 맞는 새해의 첫 기자회견인 만큼 박 대통령은 한·일 우호에 대해 적어도 인사치레의 덕담이라도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그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조금 다른 아쉬움을 표했다. 15일 방일 중인 서청원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위안부 문제가) 정치외교 문제화되는 일은 삼가고 싶다”며 기본 입장을 고수했다. 두 정상의 엇갈리는 현실인식이 여전히 두드러져 보인다.
정상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한국과 일본 시민들은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한국인·한국사회가 그 문제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고 자존감의 영역으로 어느 정도로 깊이 공감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나라를 빼앗겼던 아픔과 어렵게 찾은 국권에 대한 치열한 감동의 수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일본의 무심함, 무관심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반응한다. 현재 일본의 모든 행보가 군국주의의 재현으로 이어지고 침략으로 번질 수 있다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본의 보수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는 스테레오 타입의 일본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후 일본 시민사회가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쏟아왔던 노력을 비롯해 보수 일색인 일본 정치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고노 담화’(1993), 전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무라야마 담화’(1995)를 내놓았다는 점 등은 새겨봐야 한다. 한국의 잣대로 보면 미흡하고 양에 차지 않을지라도 그들 스스로 결정한 전향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일본의 정치권이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훼손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인하는 듯한 말을 서슴지 않았던 아베 총리조차 국회에서 두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발언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과민반응에서 벗어나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일본이 두 번 다시 담화 계승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유대관계를 굳게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강한 유대관계 위에서 일본 사회가 무심하고 무관심했던 과거사 문제를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지혜를 짜내야 맞다. 한국의 과민반응은 일본을 적대시하는 국내 여론에는 부합하겠지만 일본에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친한 사이에서는 상대가 싫어하는 언행은 가급적 피하기 마련인데, 양국 관계가 이토록 흔들리면 일본은 한국 눈치를 살피기는커녕 제 하고 싶은 대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오는 8월 전후 70주년을 맞는 일본이 혹 엉뚱한 주장을 펼칠 수도 있음이다. 시간은 많지 않고, 마음만 바쁘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무심한 일본 과민한 한국
입력 2015-01-19 02:18